원아님과 공부 후기선생님과 봄님들 안동방문
1. 선생님과 봄님들
같은 하늘아래 살고있으나
멀리만 존재해왔는데
안동에 친히 오시어
예전부터 도청신도시에
인구는 2만명이 안되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사람의 의식이 밝아질 수 있다는 것에
믿음을 갖고 상상만 해왔으나
실제 오시고 돌아가셨다
2. 양진당 충효당
겸암 류운룡선생님의 글
"퇴계선생 추도문"을
선생님께서 풀어주시어 써주신 글이 있고
그 글을 보며
도인의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양진당(맞집)이
형님인 겸암선생님의 집이고
참된 것을 기른다는 점에서 본질에 가깝고
도인으로 유명한 설화는
겸암선생님의 일화나 소문이 전설로 더 많다
충효당(동생집)은
서애선생님의 집인데
높은 관직에 오르셨고
원아선생님께서 그 14세손으로
늘 겸암선생님과
퇴계선생님의 모습을
더 중요시여기고 부각시키셨으나
이번
선생님의 안동방문을 통하여
양진당과 충효당이
뜻하는 의미가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예의범절로
인위적인 충효를 강요하는 것이라
뒤로 두었는데
본질의 하늘
하늘의 광명을
늘 보고 사는 것이
충성을 다하는 것이고
효라는 것은
이제까지 자기가 있기위해
존재해온 수많은 조상들이
나의 60조세포와 그 dna로
나에게 수록되어있으니
자기의 몸과 마음의
생각 말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돌아봄의 생활을 하는 것이
효를 다하는 삶임을 알게되어
결국
그동안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시어
양진당을 더 드러내고
충효를 그 뒤에 두었으나
그 뜻하는 의미가 같아짐으로 하나가 되었다
하회마을을
현상에서 보아도
산태극수태극으로
산수의 조화가 들어있고
더운날은 시원하고
추운날은 따뜻한 곳으로
명당이 틀림없으며
본질에서도
양진당과 충효당을 갖추어
정신의 광명을 늘 보는 [충]과
자기의 몸을 떠나지않는 [효]를
의미하고 있으니
[참된 진리를 기르는 곳]으로
너무나 충분하지 않는가
3. 소원을 비는 곳
원지수님 체험기를 통해
450여년전 서애선생님과
지금의 원아선생님의 모습에서
임진왜란이 있어
나라가 위태로운 시기에
높은 관직을 맡음에
자기를 버리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분골쇄신
일평생을 바쳐
인류 구원의 문제를
앉으나서나자나깨나
그것을 고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시었으니
너무나 앞과 뒤가 맞고
선천과 후천이 같이 감으로
그 뜻을 기리고 공부하는
후진으로 깊은 감화가 있다
1. 선생님과 봄님들
같은 하늘아래 살고있으나
멀리만 존재해왔는데
안동에 친히 오시어
예전부터 도청신도시에
인구는 2만명이 안되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사람의 의식이 밝아질 수 있다는 것에
믿음을 갖고 상상만 해왔으나
실제 오시고 돌아가셨다
2. 양진당 충효당
겸암 류운룡선생님의 글
"퇴계선생 추도문"을
선생님께서 풀어주시어 써주신 글이 있고
그 글을 보며
도인의 모습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양진당(맞집)이
형님인 겸암선생님의 집이고
참된 것을 기른다는 점에서 본질에 가깝고
도인으로 유명한 설화는
겸암선생님의 일화나 소문이 전설로 더 많다
충효당(동생집)은
서애선생님의 집인데
높은 관직에 오르셨고
원아선생님께서 그 14세손으로
늘 겸암선생님과
퇴계선생님의 모습을
더 중요시여기고 부각시키셨으나
이번
선생님의 안동방문을 통하여
양진당과 충효당이
뜻하는 의미가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예의범절로
인위적인 충효를 강요하는 것이라
뒤로 두었는데
본질의 하늘
하늘의 광명을
늘 보고 사는 것이
충성을 다하는 것이고
효라는 것은
이제까지 자기가 있기위해
존재해온 수많은 조상들이
나의 60조세포와 그 dna로
나에게 수록되어있으니
자기의 몸과 마음의
생각 말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돌아봄의 생활을 하는 것이
효를 다하는 삶임을 알게되어
결국
그동안 선생님께서
스스로를 낮추시어
양진당을 더 드러내고
충효를 그 뒤에 두었으나
양진당과 충효당이
그 뜻하는 의미가 같아짐으로 하나가 되었다
하회마을을
현상에서 보아도
산태극수태극으로
산수의 조화가 들어있고
더운날은 시원하고
추운날은 따뜻한 곳으로
명당이 틀림없으며
본질에서도
양진당과 충효당을 갖추어
정신의 광명을 늘 보는 [충]과
자기의 몸을 떠나지않는 [효]를
의미하고 있으니
[참된 진리를 기르는 곳]으로
너무나 충분하지 않는가
3. 소원을 비는 곳
원지수님 체험기를 통해
450여년전 서애선생님과
지금의 원아선생님의 모습에서
임진왜란이 있어
나라가 위태로운 시기에
높은 관직을 맡음에
자기를 버리고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분골쇄신
일평생을 바쳐
인류 구원의 문제를
앉으나서나자나깨나
그것을 고심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시었으니
너무나 앞과 뒤가 맞고
선천과 후천이 같이 감으로
그 뜻을 기리고 공부하는
후진으로 깊은 감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