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님과 공부 후기3월 24일 상도동 작업실~ 북악팔각정
아침에 일어나서
선생님 생각이 나
좀더 일찍 가볼까 아닌가
하우스 문을 열고
소밥을 주고
말머리를 돌려
톨게이트를 지나니
선생님 생각에 서울로 간다
젖떼는 소리로
자기의 몸과 마음에 깨어살라는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온라인모임이 끝이 나고
1대1의 공부이외에 스승을 뵈올 날이 없다
책의 이론이 아닌
생활 가운데 실제의 삶 가운데 공부,
또는 공부에 절절한 이가
스승에게 직문직답하는 용기가 있지 못하면
더이상의 공부가 있을 수 없음으로
그 문제를 인지하고도
선생님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원남님 집에서 낭독녹음하는 시간이라
그 시간에 맞추어 선생님을 뵙고자 간다
그동안
상중하단의 연결
본질을 직방으로 가는 인당돌아봄
머리가 시원하고 수족이 설설 끊는 도인의 징표
숙면일여의 감각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넘어서는 공부,
몸과 마음에 깨어삶이 전부이다 등
선생님말씀은
만날때마다
끝맺음이 이뤄지는 공부로
이어져오다
더이상의 알음알이가 필요없이
각자의
실천수행의 문제만 남았으므로
단체 온라인 모임이 정리되고
자기 공부로 오롯이 남겨지다
지난 수천년간 스승에게 의지하거나
하나님 또는 부처님께 밖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누구에게 빌어오던(빌던) 기복신앙이
자기의 안에서 본질을 발견하여
누구나 하나님의 존재가 확인이 되어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됨으로
세상의 재색명리를 추구하여 살아온 삶의 방식이
선천의 세상을 열기위해 물질개벽을 위해
필요한 수순이였다면 다가오는 후천세상에는
전기개벽을 이루어 모두가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연 인구가 줄어들고 모든 삶이 자동화되어
물질이 풍요로워지는 세상에
사람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자기의 영성을 계발하여 무심무아로 사는
자유평화행복의 세상이 후천개벽의 세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사랑하기>라 함은
본연의 자기
무심 무아의 자기
견성한 자기를 사랑함이다
견성한 사람은 너와 나,
인종의 구분이 없는
누구나에게나
바탕이 되는 자기이다
키가 몇이고
잘나고 못나고
돈이 있고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
일체의 개별성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그 자기,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함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육체본위
지식경험의 집합체의 자기로
잘나보이기도 못나보이기도하는
나를 용서하고 안아주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해했는데
완전히 다른 의미의 자기였구나!
새롭게 알게 됨이다
하나님은
하나 일자에 사람인 자
대
대인으로
소아가 사라져
무심 무아가 되면
대인이 됨으로
에고가 비워진 사람이 대인이다
누구나가 대인이 될 수 있다
대인이 하나님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는
하나님이 된 자기
견성한 자기
무심 무아의 자기이다
에고가 들고 일어남으로
무명으로
퉁퉁 부어 있음으로
그 자기를 알지 못한다
자기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삶의 단계로
짐승의 수준에 머물러있으며
자기(에고)가 비워진 사람이
무심 무아의 자기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의 자기이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천지만물 우주만유가
자기 안에 다 들어옴으로
진짜 부자장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이 없다
누구나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보임이다
조상의 효를 다 해마친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고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 이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지 않는가?!!!
자기가 공부 좀 했다고
다른이보다 나아보이던 그렇지않던
그 모든 것이 실제의 자기가 아니다
자기의 자존심 따위가 존재치 않는다
테두리가 없는
자기는
테두리가 없는 것으로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벽빛 노을빛같은 명암일색의 빛과 같은
존재임을 늘 본다
그래서 늘 봄이다
견성하면 끝이다
늘 그것을 보고 있다
잠시잠깐 보고
자기가 알았다거나
수족이 따뜻하고 머리가 시원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늘 보고 있음이다
견성이 다이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과거가 없고
미래도 없다
지금 여기 무심무아이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아는 게 있으면 안된다
그게 망조다
머리가 좋아서 잘 알아먹는 거도 아니다
쑥맥과 같아져야한다
견성이 알고보면 참 쉬운 것이다
이 외에
선생님 글을 읽고
글귀대로 이해하고 보았다고
착각하여 묻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알음알이,
생각으로 이해하고 덧붙이는 것으로
공부 포인트가 벗어났음을 인지하고
또 대도라서
자기가 바뀐 줄 모르고 바뀐다는
알음알이 또는
10년전에 쓴 글이
요즘 쓴 글이나 비슷한데 그것이 바뀌었다고 하나
바뀐 것이 맞는가 물어보았는데
선생님께서
"오직
자기가 지금 말하면서
자기 말소리를 들으면서 말하는 가
자기가 몸을 움직이는 순간
움직이는 줄 알고 움직이는 가
이것만 따질 뿐
과거도 생각지말고
지금 여기 처음 시작하듯
이것만 할 뿐으로 살아야
이제껏 무의식으로 살아왔음으로
이것만 하고 살 뿐으로~~ "
하여야함을 말씀해주심이다
원득님께서 오시어
선생님 원혜님 원지수님 그 차를 타고
원남님을 내 차에 태워
북악팔각정으로 가다
내비가 샛길로 인도하는 바람에
인왕산 능선을 타고 구불구불 북악산으로 간다
《북악산 팔각정》
십여년전 선생님과 함께도 와보고
다른 봄님들과도 와보고
지금은 스무살이 넘었을
봄님들의 어린애들의 가이드로 와본 곳이다
그때의 나를 지금 기억한다
보현봉의 우뚝 솟은 기상
무심 무아의 기상
대인의 기상
<도는 스페이스이다>
공간
감각
우뇌의 상징
보현봉은
그 아래에 자기 어깨높이로
주변을 아우르고 품어주기도 하여
자연의 품이 되어주어
서울의 도심을 아래로 내려본다
세속의
서울의 빌딩숲이
팔각정에서는 발아래에 보인다
그 높디높은
물질의 개벽이란 것들도
자자한 것들이다
뒤로 보이는
우뇌를 상징하고
공간을 상징하는 보현봉이라는
감각의 품에
세상의 시비곡절,
상대비교, 졸렬한 것들은
자잘한 것들이라서
옹기종기 모여있어
물질개벽이 날고뛰어도
정신이 없이는 불가하고
정신의 높은 기상이 있고
물질이 아닌 물질의 본원,
근본이 되는 본질이 없이는
존재자체가 불가함이여서
놀랍도다~!
우뚝 솟은 보현봉이여~~~!
보현봉 산자락을 보며
그 속에 자연의 신선한 기운으로
머리 속에 새물이 들어온 듯하여
내가 과거에 여기 살았던가
생각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자연에 묻혀있는 상상이 잠깐 들기도한다
서울은 큰도시로
시골에서는 그 복잡한 도심만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연이 품어주기에
그것보다 위대한 본질의 품이 있음으로 하여
이루어진 도시,
서울이다
팔각정에서는
물질개벽이 이루어진 서울의 빌딩숲을
발아래에 두고 내려볼 수 있으며
뒤로는
보현봉의 우뚝솟은 자태
늠름한 기상을 볼 수 있다
(설악산 금강산 큰 사진으로 본 것을
섞어 놓은 듯한 실제의 모습이다)
감각이 저래야
감각이 저정도가 되어야
천지신명의 자격이 있다
정신개벽
인류정신의 연원을 이야기하라 하시면
(세계문명의 발상지라고도 표현되는
그러한 곳도 있으나)
이제 우리에게는
후천개벽의 정신의 발상지
정신개벽의 연원인
도봉산을 조상으로 둔
삼각산 아버지에
보현봉 아들
그 아래 북악산
상춘재(늘봄의 집)가 있으며
그 앞으로 광화문대로가
쭉 뻗어나가
서울의 중심인 용산
공부장소인
노들섬이 있음이다
산수의 조화로 만들어진
서울이라는 도시가
세계인의
정신의 고향
존재의 고향
후천 정신개벽의 연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감동하고 감탄할 뿐으로
천지신명의 기상을 가진 보현봉을
찬탄할 뿐이고
그 아름다운 자태에
그 자연의 품에
정신(soul)이 깃들어 있었으니
꼭 맞음이었구나!
원혜님께서 미국에서 오시어
원지수님께서 차를 뽑아서 발을 달아
팔각정에 갔다오시는 바람에
삼십여년전
선생님께서 매일같이 오르던
몸돌아봄의 수행터에서
본질과 현상이 하나되는
산수의 조화로 이루어진 서울의 모습
그 중에서
보현봉의 위대한 모습을 감상하고 오다
보현봉의 위용
보현봉이 품어주는 서울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도심
아침에 일어나서
선생님 생각이 나
좀더 일찍 가볼까 아닌가
하우스 문을 열고
소밥을 주고
말머리를 돌려
톨게이트를 지나니
선생님 생각에 서울로 간다
젖떼는 소리로
자기의 몸과 마음에 깨어살라는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온라인모임이 끝이 나고
1대1의 공부이외에 스승을 뵈올 날이 없다
책의 이론이 아닌
생활 가운데 실제의 삶 가운데 공부,
또는 공부에 절절한 이가
스승에게 직문직답하는 용기가 있지 못하면
더이상의 공부가 있을 수 없음으로
그 문제를 인지하고도
선생님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원남님 집에서 낭독녹음하는 시간이라
그 시간에 맞추어 선생님을 뵙고자 간다
그동안
상중하단의 연결
본질을 직방으로 가는 인당돌아봄
머리가 시원하고 수족이 설설 끊는 도인의 징표
숙면일여의 감각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을 넘어서는 공부,
몸과 마음에 깨어삶이 전부이다 등
선생님말씀은
만날때마다
끝맺음이 이뤄지는 공부로
이어져오다
더이상의 알음알이가 필요없이
각자의
실천수행의 문제만 남았으므로
단체 온라인 모임이 정리되고
자기 공부로 오롯이 남겨지다
지난 수천년간 스승에게 의지하거나
하나님 또는 부처님께 밖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누구에게 빌어오던(빌던) 기복신앙이
자기의 안에서 본질을 발견하여
누구나 하나님의 존재가 확인이 되어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됨으로
세상의 재색명리를 추구하여 살아온 삶의 방식이
선천의 세상을 열기위해 물질개벽을 위해
필요한 수순이였다면 다가오는 후천세상에는
전기개벽을 이루어 모두가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연 인구가 줄어들고 모든 삶이 자동화되어
물질이 풍요로워지는 세상에
사람에게 남은 일이라고는
자기의 영성을 계발하여 무심무아로 사는
자유평화행복의 세상이 후천개벽의 세상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사랑하기>라 함은
본연의 자기
무심 무아의 자기
견성한 자기를 사랑함이다
견성한 사람은 너와 나,
인종의 구분이 없는
누구나에게나
바탕이 되는 자기이다
키가 몇이고
잘나고 못나고
돈이 있고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쁘고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
일체의 개별성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그 자기,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함
그동안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육체본위
지식경험의 집합체의 자기로
잘나보이기도 못나보이기도하는
나를 용서하고 안아주고
받아들이는 쪽으로 이해했는데
완전히 다른 의미의 자기였구나!
새롭게 알게 됨이다
하나님은
하나 일자에 사람인 자
대
대인으로
소아가 사라져
무심 무아가 되면
대인이 됨으로
에고가 비워진 사람이 대인이다
누구나가 대인이 될 수 있다
대인이 하나님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는
하나님이 된 자기
견성한 자기
무심 무아의 자기이다
에고가 들고 일어남으로
무명으로
퉁퉁 부어 있음으로
그 자기를 알지 못한다
자기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삶의 단계로
짐승의 수준에 머물러있으며
자기(에고)가 비워진 사람이
무심 무아의 자기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서의 자기이다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떠들고 다니지 않아도
천지만물 우주만유가
자기 안에 다 들어옴으로
진짜 부자장자이다
그리고 그러한 상이 없다
누구나가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보임이다
조상의 효를 다 해마친 사람
온전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전에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고
"자기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나온 이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지 않는가?!!!
자기가 공부 좀 했다고
다른이보다 나아보이던 그렇지않던
그 모든 것이 실제의 자기가 아니다
자기의 자존심 따위가 존재치 않는다
테두리가 없는
자기는
테두리가 없는 것으로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벽빛 노을빛같은 명암일색의 빛과 같은
존재임을 늘 본다
그래서 늘 봄이다
견성하면 끝이다
늘 그것을 보고 있다
잠시잠깐 보고
자기가 알았다거나
수족이 따뜻하고 머리가 시원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늘 보고 있음이다
견성이 다이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
과거가 없고
미래도 없다
지금 여기 무심무아이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아는 게 있으면 안된다
그게 망조다
머리가 좋아서 잘 알아먹는 거도 아니다
쑥맥과 같아져야한다
견성이 알고보면 참 쉬운 것이다
이 외에
선생님 글을 읽고
글귀대로 이해하고 보았다고
착각하여 묻기도 하였는데
그것이 알음알이,
생각으로 이해하고 덧붙이는 것으로
공부 포인트가 벗어났음을 인지하고
또 대도라서
자기가 바뀐 줄 모르고 바뀐다는
알음알이 또는
10년전에 쓴 글이
요즘 쓴 글이나 비슷한데 그것이 바뀌었다고 하나
바뀐 것이 맞는가 물어보았는데
선생님께서
"오직
자기가 지금 말하면서
자기 말소리를 들으면서 말하는 가
자기가 몸을 움직이는 순간
움직이는 줄 알고 움직이는 가
이것만 따질 뿐
과거도 생각지말고
지금 여기 처음 시작하듯
이것만 할 뿐으로 살아야
이제껏 무의식으로 살아왔음으로
이것만 하고 살 뿐으로~~ "
하여야함을 말씀해주심이다
원득님께서 오시어
선생님 원혜님 원지수님 그 차를 타고
원남님을 내 차에 태워
북악팔각정으로 가다
내비가 샛길로 인도하는 바람에
인왕산 능선을 타고 구불구불 북악산으로 간다
《북악산 팔각정》
십여년전 선생님과 함께도 와보고
다른 봄님들과도 와보고
지금은 스무살이 넘었을
봄님들의 어린애들의 가이드로 와본 곳이다
그때의 나를 지금 기억한다
보현봉의 우뚝 솟은 기상
무심 무아의 기상
대인의 기상
<도는 스페이스이다>
공간
감각
우뇌의 상징
보현봉은
그 아래에 자기 어깨높이로
주변을 아우르고 품어주기도 하여
자연의 품이 되어주어
서울의 도심을 아래로 내려본다
세속의
서울의 빌딩숲이
팔각정에서는 발아래에 보인다
그 높디높은
물질의 개벽이란 것들도
자자한 것들이다
뒤로 보이는
우뇌를 상징하고
공간을 상징하는 보현봉이라는
감각의 품에
세상의 시비곡절,
상대비교, 졸렬한 것들은
감각의 품에
자잘한 것들이라서
옹기종기 모여있어
물질개벽이 날고뛰어도
정신이 없이는 불가하고
정신의 높은 기상이 있고
물질이 아닌 물질의 본원,
근본이 되는 본질이 없이는
존재자체가 불가함이여서
놀랍도다~!
우뚝 솟은 보현봉이여~~~!
보현봉 산자락을 보며
그 속에 자연의 신선한 기운으로
머리 속에 새물이 들어온 듯하여
내가 과거에 여기 살았던가
생각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자연에 묻혀있는 상상이 잠깐 들기도한다
서울은 큰도시로
시골에서는 그 복잡한 도심만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자연이 품어주기에
그것보다 위대한 본질의 품이 있음으로 하여
이루어진 도시,
서울이다
팔각정에서는
물질개벽이 이루어진 서울의 빌딩숲을
발아래에 두고 내려볼 수 있으며
뒤로는
보현봉의 우뚝솟은 자태
늠름한 기상을 볼 수 있다
(설악산 금강산 큰 사진으로 본 것을
섞어 놓은 듯한 실제의 모습이다)
감각이 저래야
감각이 저정도가 되어야
천지신명의 자격이 있다
정신개벽
인류정신의 연원을 이야기하라 하시면
(세계문명의 발상지라고도 표현되는
그러한 곳도 있으나)
이제 우리에게는
후천개벽의 정신의 발상지
정신개벽의 연원인
도봉산을 조상으로 둔
삼각산 아버지에
보현봉 아들
그 아래 북악산
상춘재(늘봄의 집)가 있으며
그 앞으로 광화문대로가
쭉 뻗어나가
서울의 중심인 용산
공부장소인
노들섬이 있음이다
산수의 조화로 만들어진
서울이라는 도시가
세계인의
정신의 고향
존재의 고향
후천 정신개벽의 연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감동하고 감탄할 뿐으로
천지신명의 기상을 가진 보현봉을
찬탄할 뿐이고
그 아름다운 자태에
그 자연의 품에
정신(soul)이 깃들어 있었으니
꼭 맞음이었구나!
원혜님께서 미국에서 오시어
원지수님께서 차를 뽑아서 발을 달아
팔각정에 갔다오시는 바람에
삼십여년전
선생님께서 매일같이 오르던
몸돌아봄의 수행터에서
본질과 현상이 하나되는
산수의 조화로 이루어진 서울의 모습
그 중에서
보현봉의 위대한 모습을 감상하고 오다
보현봉의 위용
보현봉이 품어주는 서울
팔각정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