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님과 공부 후기3월 17일 선생님 만남
원혜님 원녀님과 함께
베란다에 갖가지 꽃이 피어있는
선생님 집을 다녀오다
특히 군자란 모습이
복스럽고 탐스러워 보기좋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고
세상과 섞이여
자기를 팔아먹고
남을 사랑하거나
남을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은
모두 잘못된 행동이다
자기도 망하고
상대도 망함이다
산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볼 때
그것에 팔려
자기를 놓치는 행동은 잘못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기몸을 위해 주어야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일인데
자기 몸을 위할 줄 모르고
오랜만에 만났다고
밤을 세워 얘기하고 있다가 쪽잠을 자고
선생님 댁에 왔다고하니
자기 몸을 위할 줄 알아
자기도 살고 상대도 살리는 말씀을 듣는다
세상의
유정물 뿐 아니라
무정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과 소통하고
그것과 하나되어 사는 삶
천지만물과 소통되고
그것과 하나임을 확인하고 삶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삶인데
그렇지 못함은
꽃을 볼때
보는 나가 없이 보지못하고
본심을 이루지 못하고
그것이 나와 바로 하나되어 존재함을
느끼지 못하고
화사함에 감탄만 할 뿐
상대가 되어 육체에 갇히어 볼 뿐으로
내가 저것을 만든 창조주이고
내가 그것을 바라보며
나와 하나가 됨을 느끼지 못함이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
정신을 팔아먹거나 놓치지 않아
자기를 돌아봄이
정신머리에 박히지 않은 채
좋고 이쁜 것
상대를 위한다는 것
산과 하늘을 보고
자기와 분리감이 없이
보는 그 자체가 나이고
보이는 대상도 나임을 알면
자기가 상대와 떨어지지 않음으로 괜찮은 것이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신 원혜님
그곳과 지금 여기의 거리감
지금의 기술로 화성우주여행은
가고옴에 2년반이란 시간이 걸리어
총 5년이 걸려야 갔다올 수 있는데
가더라도 그 중간에 시계를 보고
기다리거나 갔다오더라도
언제 갔다왔는지 잊어버리고
좋았는지도 나빴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여서
자기의
내면에
무한대한 하늘에
광대무량한 하늘이 있음으로
그 모든 것들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
자기의 존재,
우주의 본체,
정신머리가
둥글고 텅 비어있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벽빛노을빛같은
명암일색의 빛이
나인 줄 알면
불평불만이 없고
괴롭고 고달프고 서러울 일이 없고
억울할 일이 없고
번뇌망상이 있더라도
금방 사라짐으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거나
하지않거나
자기가 이미 부자장자
모두 내것 아님이 없음을
깨달음으로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생불멸한 것으로
그것을 깨달음으로
회광반조하여
그 나를 깨달음으로
이것보다 나은 것은
세상에 존재치 않음이다
생각으로 상상하는 것과
그 견성자리를 보고
실시간 생중계하는 것은 차이가 있어
선생님 글귀와 말씀으로
그것을 느끼기는 하려고 애쓸 수 있으나
자기 스스로 깨닫기 힘들고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함으로
스승의 안내로 그 지경을 보고
그것을 실지실견하고 좋음을 깨닫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과 같음으로
흉내를 내거나
자기가 보지 못하고 얘기하는 것은
그것의 그림자일 뿐으로
거짓말쟁이가 됨이고
실제가 아니다
그 견성자리를 보면서
얘기할 줄 알아야함이고
깨달음을 유위로 하여
그 유위에 맞추어 생각하고
그것과 틀리면 아니되는 것이 보통이나
이렇게 참 견성을 한 사람은
늘 그것을 보고 얘기할 수 있고
늘 그 견성자리를 봄으로
번뇌망상에
늘 자유할 수 있음으로
프리 프롬~
증득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선생님 댁을 나와
보현봉을 뒤로하고
북악산 옆 터널을 지나
경복궁 앞으로
광화문대로를 타고
덕수궁과 시청사이를 뚫고
용산을 지나
노들섬을 지나
상도동 원남님 집에 도착하여
낭독녹음자리에 오다
점심은 꼬막비빔밥으로
고소한 깨와 파기름, 청고추양념
맛있게 먹고는 커피타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고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는 진실을 알아야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
그 뱀의 혓바닥이 날름거림에
겁에 질리거나 도망가지않고
뱀이 몸을 세우듯
정신을 차려
내 몸을 알아주고
내 몸을 일으켜주고
내 몸에 긍정의 힘을 실어주고
내 몸을 아낄 줄 알면
그 몸이 알아서
날 살리어주고
긍정하게 되어
조금조금낫고 발전하게 되어
아픔이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 나아
이제껏
텅비고 고요하고 맑고 밝은 자리가
견성자리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사에 구애받지않는 힘
막강한 힘으로
자기를 살릴 줄 알아야 증득한 것이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큰 공부가 온다
내가 공부 이만큼하였는데...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므로
이런 것들이 안와야 정상인것 아닌가?
가 아니라
그것들이 와도 끄덕이 없는
아픔이 와도
그것을 느껴보고
껴안아 줄 수 있는 대인이 됨이
공부의 목표로
의젓하고 의연함의 차이로
판가람이 날 뿐이여서
죽으면 죽는 거지
죽기밖에 더 하겠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죽음이 꼴도 보기싫다거나
죽음앞에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겁이 없고
문제되지않음으로 넘어서는
그것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자기를 살리고자하는
큰 축복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공부의 기회로 받아들여
나를 크게 키우시려는
하늘의 자비로움인 줄 알아
그것을 넘어서고자
증득의 기회,
찬스가 온 것임을 알아
그 난관을 넘어서기만 하면
백살까지 문제가 없고
자기도 큰 공부를 이룰 수 있다
보통의 사람은
그것에 두려워 떨다가
의지가 꺾이고 약하게 되어
까부라져
간 줄도 모르게 가고 만다
공부해서 뭐에 쓸 것인가?!
타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죽음의 공포앞에
그 집단의식에 넘어서는 공부인
비단
그것이 다른 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생각에 조금이라도 끌리거나
자기의 문제가 되어
약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여
정신차려 사는 것의 본보기로
공부가 이것이고
증득이 이것이라는
선생님말씀이 있으셨고
시간이 되어 돌아나오다
나뭇가지에
봄을 알리는
물오름
싹이 돋아남으로
붉은 듯
푸른 듯
산의 색감이 들어오는
고속도로를 달려
원녀님을 모셔주고
집으로 돌아오다
선생님 댁 화단
군자란
화단 옆 선생님 모습 찍어보았습니다
원혜님 원녀님과 함께
베란다에 갖가지 꽃이 피어있는
선생님 집을 다녀오다
특히 군자란 모습이
복스럽고 탐스러워 보기좋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고
세상과 섞이여
자기를 팔아먹고
남을 사랑하거나
남을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은
모두 잘못된 행동이다
자기도 망하고
상대도 망함이다
산을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볼 때
그것에 팔려
자기를 놓치는 행동은 잘못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기몸을 위해 주어야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는 일인데
자기 몸을 위할 줄 모르고
오랜만에 만났다고
밤을 세워 얘기하고 있다가 쪽잠을 자고
선생님 댁에 왔다고하니
자기 몸을 위할 줄 알아
자기도 살고 상대도 살리는 말씀을 듣는다
세상의
유정물 뿐 아니라
무정물에 이르기까지
그것들과 소통하고
그것과 하나되어 사는 삶
천지만물과 소통되고
그것과 하나임을 확인하고 삶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삶인데
그렇지 못함은
꽃을 볼때
보는 나가 없이 보지못하고
본심을 이루지 못하고
그것이 나와 바로 하나되어 존재함을
느끼지 못하고
화사함에 감탄만 할 뿐
상대가 되어 육체에 갇히어 볼 뿐으로
내가 저것을 만든 창조주이고
내가 그것을 바라보며
나와 하나가 됨을 느끼지 못함이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할 줄 알아
정신을 팔아먹거나 놓치지 않아
자기를 돌아봄이
정신머리에 박히지 않은 채
좋고 이쁜 것
상대를 위한다는 것
산과 하늘을 보고
자기와 분리감이 없이
보는 그 자체가 나이고
보이는 대상도 나임을 알면
자기가 상대와 떨어지지 않음으로 괜찮은 것이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신 원혜님
그곳과 지금 여기의 거리감
지금의 기술로 화성우주여행은
가고옴에 2년반이란 시간이 걸리어
총 5년이 걸려야 갔다올 수 있는데
가더라도 그 중간에 시계를 보고
기다리거나 갔다오더라도
언제 갔다왔는지 잊어버리고
좋았는지도 나빴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여서
자기의
내면에
무한대한 하늘에
광대무량한 하늘이 있음으로
그 모든 것들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아
자기의 존재,
우주의 본체,
정신머리가
둥글고 텅 비어있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새벽빛노을빛같은
명암일색의 빛이
나인 줄 알면
불평불만이 없고
괴롭고 고달프고 서러울 일이 없고
억울할 일이 없고
번뇌망상이 있더라도
금방 사라짐으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거나
하지않거나
자기가 이미 부자장자
모두 내것 아님이 없음을
깨달음으로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생불멸한 것으로
그것을 깨달음으로
회광반조하여
그 나를 깨달음으로
이것보다 나은 것은
세상에 존재치 않음이다
생각으로 상상하는 것과
그 견성자리를 보고
실시간 생중계하는 것은 차이가 있어
선생님 글귀와 말씀으로
그것을 느끼기는 하려고 애쓸 수 있으나
자기 스스로 깨닫기 힘들고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함으로
스승의 안내로 그 지경을 보고
그것을 실지실견하고 좋음을 깨닫고
그것이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것과 같음으로
흉내를 내거나
자기가 보지 못하고 얘기하는 것은
그것의 그림자일 뿐으로
거짓말쟁이가 됨이고
실제가 아니다
그 견성자리를 보면서
얘기할 줄 알아야함이고
깨달음을 유위로 하여
그 유위에 맞추어 생각하고
그것과 틀리면 아니되는 것이 보통이나
이렇게 참 견성을 한 사람은
늘 그것을 보고 얘기할 수 있고
늘 그 견성자리를 봄으로
번뇌망상에
늘 자유할 수 있음으로
프리 프롬~
증득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선생님 댁을 나와
보현봉을 뒤로하고
북악산 옆 터널을 지나
경복궁 앞으로
광화문대로를 타고
덕수궁과 시청사이를 뚫고
용산을 지나
노들섬을 지나
상도동 원남님 집에 도착하여
낭독녹음자리에 오다
점심은 꼬막비빔밥으로
고소한 깨와 파기름, 청고추양념
맛있게 먹고는 커피타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고
죽어있으면서도 살아있는 진실을 알아야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
그 뱀의 혓바닥이 날름거림에
겁에 질리거나 도망가지않고
뱀이 몸을 세우듯
정신을 차려
내 몸을 알아주고
내 몸을 일으켜주고
내 몸에 긍정의 힘을 실어주고
내 몸을 아낄 줄 알면
그 몸이 알아서
날 살리어주고
긍정하게 되어
조금조금낫고 발전하게 되어
아픔이 언제 그랬냐는 듯
씻은 듯 나아
이제껏
텅비고 고요하고 맑고 밝은 자리가
견성자리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생사에 구애받지않는 힘
막강한 힘으로
자기를 살릴 줄 알아야 증득한 것이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큰 공부가 온다
내가 공부 이만큼하였는데...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므로
이런 것들이 안와야 정상인것 아닌가?
가 아니라
그것들이 와도 끄덕이 없는
아픔이 와도
그것을 느껴보고
껴안아 줄 수 있는 대인이 됨이
공부의 목표로
의젓하고 의연함의 차이로
판가람이 날 뿐이여서
죽으면 죽는 거지
죽기밖에 더 하겠나 하는 마음가짐으로
죽음이 꼴도 보기싫다거나
죽음앞에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 겁이 없고
문제되지않음으로 넘어서는
그것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자기를 살리고자하는
큰 축복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공부의 기회로 받아들여
나를 크게 키우시려는
하늘의 자비로움인 줄 알아
그것을 넘어서고자
증득의 기회,
찬스가 온 것임을 알아
그 난관을 넘어서기만 하면
백살까지 문제가 없고
자기도 큰 공부를 이룰 수 있다
보통의 사람은
그것에 두려워 떨다가
의지가 꺾이고 약하게 되어
까부라져
간 줄도 모르게 가고 만다
공부해서 뭐에 쓸 것인가?!
타력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죽음의 공포앞에
그 집단의식에 넘어서는 공부인
비단
그것이 다른 이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생각에 조금이라도 끌리거나
자기의 문제가 되어
약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여
정신차려 사는 것의 본보기로
공부가 이것이고
증득이 이것이라는
선생님말씀이 있으셨고
시간이 되어 돌아나오다
나뭇가지에
봄을 알리는
물오름
싹이 돋아남으로
붉은 듯
푸른 듯
산의 색감이 들어오는
고속도로를 달려
원녀님을 모셔주고
집으로 돌아오다
선생님 댁 화단
군자란
화단 옆 선생님 모습 찍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