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166. 생각이 없는 마음자리를 깨달음

유종열
2022-02-14
조회수 25



봄166.


생각이 

없는 


마음자리를


깨달음.



생각에는 


있다는 

생각과 


없다는 

생각

(有無)


크다는 

생각과 


작다는 

생각

(大小)


옳다는 

생각과 


그르다는 

생각

(是非)


착하다는 

생각과 


악하다는 

생각

(善惡)


아름답다는 

생각과 


추하다는 

생각

(美醜)


좋아한다는 

생각과 


싫어한다는

생각

(好惡) 

등등


두 

갈래다.


생각은 

상대성이기 

(相對性)

때문이다.


내가

있으므로 


너가 

있고 


우리가

있으므로 


그들이

있고


있다는 

생각이 

있으므로


없다는 

생각이 

나온다.


이것이 


생각의 

틀이다.


생각은

언제나 


이분법이고 

(二分法)


양자택일이다. 

(兩者擇一)


그러므로 

생각이

없는 

자리란


생각으로 

없다고 

하는 

자리가

아니다.


참으로

생각이 

없는 

자리란 


생각으로 

없다고 

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

역시 

생각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없는 

자리란


그 

없다는 

생각마저 

없는 

자리다.


이 

점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이

없다는 


또 

하나의 

생각에 

속아


마치 

자기가 


생각 

없는

자리를 


깨달은 

것으로

착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속아


사람들은 


돌아봄의 

수행을 

하지 

않는다.


참으로


생각

없는

자리란


있다는

생각이나 


없다는

생각이나


둘 

다 

없어야 


참으로 

생각이

없는 

자리다.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혼연일체가

되어 


둘 

사라져야


참으로 

생각이 

없는 

자리가 


깨달아진다.


지금

여기가 


바로 


그 

자리다.


깨어있음이다.


주객일체, 

물아일체다.


이 

자리가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이다.


그 

자리는 


항상 


지금 

여기에 

있다.


이 

자리를


당장 

깨달아야 

한다.


자리를 


당장

보아야 

한다.


자리를

보아야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나


양자택일이라고

하는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자리를

깨달아야


자기가 

자기를 

자해하지 

(自害)

않는 

사람이다.


자기가 

자기를 

자해하는 

(自害)

사람이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기를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자기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남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거짓 

사랑이다.


그것은

협잡이고 

사기다. 


참으로 

사랑의 

인간이 

되려면


생각이 

없는 

마음 

자리,


절대성을 

(絶對性)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견성이다. 

(見性)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


당장 


깨닫도록

하라.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깨달았다고 

하여도 


다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의식의 

스크린이 

항상 

눈앞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거울을 

항상 

보며 

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자유자재하게 

부리며 

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다시 


수행을 

시작하여야 

한다.


생각이

없는

마음 

자리를 


깨달음은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진짜 

공부는 


지금부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대는


스승과

친구가 

될 

있다.


그래야 

그대는 


스승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