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43. 감각의 두가지 측면
봄43.
감각의
두가지
측면
감각이란
안으로
자기의
생각이나
언행을
감지하는
작용과
밖으로
자기
이외의
사물에
대한
모양과
색깔을
보는
시각과
(視覺)
소리를
듣는
청각과
(聽覺)
냄새를
맡는
후각과
(嗅覺)
맛을
미각과
(味覺)
피부로
차고
따뜻한
기온의
온냉이나
(溫冷)
거칠고
부드러움을
감촉하는
촉각
(觸覺)
등
다섯가지를
오관의
(五管)
작용이
있습니다.
정신의
속성으로
자기자신이나
사물을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공간의
감지능력
입니다.
이에
비해
육체와
생각을
자기라고
여기는
소아적인
분상에서는
생각은
육체의
생겨났다가
머물다가
사라지는
사물이나
현상만을
중시하여
현상이
나타나도록
하는
바탕이나
근본인
본질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등한하여
물성이요
시간성인
재색명리만을
(財色名利)
추구하다
보니
외부지향적인
오관만을
내부지향적인
제6감각(돌아봄)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시들어지고
퇴보되고
잠재되어
돌아봄의
눈이
감겨
쓰지
못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물질과
추구하는
물성만
(物性)
발달하고
나오는
바탕이자
본질이며
영성인
(靈性)
발달은
정체되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알지
못하고
남들에
훤하게
잘
알면서도
정작
자신에
어두운
무명중생이
(無明衆生)
되었습니다.
감각중
다섯개의
대롱인
오관을
통해서는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한정된
공간만을
감지하고
제6감각(돌아봄)으로
내면의
무한공간인
절대공간을
(絶對空間)
깨달을
수
육안으로
(肉眼)
위(上)를
쳐다볼
때에는
아래(下)가
안보이고
앞(前)을
쳐다
볼때에는
뒤(後)가
왼쪽(左)을
볼
오른쪽(右)이
안보이지만
심안인
(心眼)
돌아봄으로
쳐다보면
동서남북
사방팔방
시방의
(十方)
공간이
다
보입니다.
삼라만상이라는
물질현상은
무한공간이라는
본질이
있으므로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정신은
본질이요
육체는
현상
정신이
주(主)이고
종(從)
속성인
생각과
주인으로
착각하고
바람에
제6감(돌아봄)을
발휘하지
못하여
부동하고
불변한
무한공간과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영원한
광명
원만구족한
평상심,
본심을
상실하여
변하고
동하는
헛된
현상을
소유하려고
노심초사
(勞心焦思)
하면서
병고에
(病苦)
시달리는
괴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관과
생각에
편중된
육체본위의
삶의
구조를
바꾸어
제6감각인
능력을
복원시켜
물성인
인간을
정신본위의
인간으로
바로
잡아
측면인
바라봄과
돌아봄이
동시적으로
하나로
작동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형체가
없어
불변하고
부동한
존재이며
무한
허공성인
있고
변하고,
현상인
육체
보다
우선이므로
감지능력인
감각이
시간의
운행능력인
생각보다
생각의
모드를
모드로
음인
양인
살려쓰는
음양상생의
(陰陽相生)
음덕을
(陰德)
발휘하여야
봄43.
감각의
두가지
측면
감각이란
안으로
자기의
생각이나
언행을
감지하는
작용과
밖으로
자기
이외의
사물에
대한
모양과
색깔을
보는
시각과
(視覺)
소리를
듣는
청각과
(聽覺)
냄새를
맡는
후각과
(嗅覺)
맛을
보는
미각과
(味覺)
피부로
차고
따뜻한
기온의
온냉이나
(溫冷)
거칠고
부드러움을
감촉하는
촉각
(觸覺)
등
다섯가지를
감지하는
오관의
(五管)
작용이
있습니다.
감각이란
정신의
속성으로
자기자신이나
자기
이외의
사물을
구분하지
않고
모조리
감지하는
공간의
감지능력
입니다.
이에
비해
육체와
생각을
자기라고
여기는
소아적인
분상에서는
생각은
육체의
속성으로
생겨났다가
머물다가
사라지는
생각이나
사물이나
현상만을
중시하여
현상이
나타나도록
하는
바탕이나
근본인
본질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등한하여
물성이요
시간성인
재색명리만을
(財色名利)
추구하다
보니
외부지향적인
오관만을
(五管)
중시하여
내부지향적인
제6감각(돌아봄)을
사용하지
않다보니
시들어지고
퇴보되고
잠재되어
돌아봄의
눈이
감겨
쓰지
못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육체와
물질과
현상만을
추구하는
물성만
(物性)
발달하고
육체와
물질과
현상이
나오는
바탕이자
근본인
본질이며
영성인
(靈性)
정신의
발달은
정체되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알지
못하고
남들에
대해서는
훤하게
잘
알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두운
무명중생이
(無明衆生)
되었습니다.
감각중
외부지향적인
다섯개의
대롱인
오관을
(五管)
통해서는
가시적이고
현상적인
한정된
공간만을
감지하고
감각중
내부지향적인
제6감각(돌아봄)으로
내면의
무한공간인
절대공간을
(絶對空間)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밖으로
육안으로
(肉眼)
위(上)를
쳐다볼
때에는
아래(下)가
안보이고
앞(前)을
쳐다
볼때에는
뒤(後)가
안보이고
왼쪽(左)을
쳐다
볼
때에는
오른쪽(右)이
안보이지만
안으로
심안인
(心眼)
돌아봄으로
쳐다보면
동서남북
사방팔방
시방의
(十方)
공간이
다
보입니다.
삼라만상이라는
물질현상은
무한공간이라는
본질이
있으므로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정신은
본질이요
육체는
현상
입니다.
정신이
주(主)이고
육체는
종(從)
입니다.
육체와
육체의
속성인
생각과
오관을
주인으로
착각하고
재색명리만을
추구하는
바람에
정신의
속성인
내부지향적인
제6감(돌아봄)을
발휘하지
못하여
부동하고
불변한
무한공간과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영원한
광명
원만구족한
평상심,
본심을
상실하여
변하고
동하는
헛된
현상을
소유하려고
노심초사
(勞心焦思)
하면서
병고에
(病苦)
시달리는
괴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부지향적인
오관과
생각에
편중된
육체본위의
삶의
구조를
바꾸어
내부지향적인
제6감각인
돌아봄의
능력을
복원시켜
물성인
육체본위의
인간을
영성인
정신본위의
인간으로
바로
잡아
감각의
두가지
측면인
바라봄과
돌아봄이
동시적으로
하나로
작동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형체가
없어
불변하고
부동한
존재이며
무한
허공성인
정신이
형체가
있고
변하고,
동하는
현상인
육체
보다
우선이므로
공간의
감지능력인
감각이
시간의
운행능력인
생각보다
우선이므로
육체본위의
생각의
모드를
정신본위의
감각의
모드로
바꾸어
음인
감각이
양인
생각을
살려쓰는
음양상생의
(陰陽相生)
음덕을
(陰德)
발휘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