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22. 본질의 질량과 물질의 질량
봄22.
본질의
질량과
물질의
질량
질량이란
(質量)
바탕
질(質)
자(字)와
헤아릴
량(量)
자(字)로
구성되어
있는바
이로
미루어
볼
때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물질만
질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본질에도
질량의
구조가
있습니다.
본질,
영성,
정신의
바탕이란
무한허공이며
무한허공
가운데
꽉들어차
광명이
량(量)자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본질
영성
질량을
한마디로
표현하여
바탕인
무한
허공을
광대하다고
(廣大)
하고
꽉
들어찬
광명의
부피와
무게가
없다는
뜻에서
무량하다고
(無量)
하여
광대무량
(廣大無量)
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입니다.
허공이
무한하게
크고
넓으나
거기에
가득찬
광명은
모양과
무게라는
량(量)이
없어
헤아림이
없고,
생각이
없어,
무심
(無心)
이러한
본질인
무(無)의
현상인
유(有)의
물질로
나타나면서
한정된
공간에
내용과
질량으로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질량은
광대무량하고
협소유량
(狹小有量)
무한공간에
광명
(영성의
빛)
이고
유한공간에
입자인
동시에
파장
그러므로
무한하늘이
바탕이
되고
근본이
되어
태양이
만들어지고
순차적으로
별들이
만들어져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
천체를
운행하므로서
한
세계가
무량세계가
창조되고
텅빈
음(陰)이고
양(陽)이
이합집산으로
(離合集散)
음(陰)인
무생물과
양(陽)인
생물로
나누어지면서
만물을
방출하고
(放出)
회수
(回收)
무(無)인
질량에서
유(有)인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방출과
회수를
무시무종으로
(無始無終)
반복합니다.
바탕(質)이
무한하고
무량한
회수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으므로
부동하고
불변하여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에서도
텅비고
화안한
사라지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아
항존함을
(恒存)
봅니다.
이것을
보고
알아야
만물의
영장인
사람입니다.
모르면
참으로
철든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란
무엇입니까?
고요하고
깨끗하고
영성이요,
(靈性)
광대무량이요,
본심
(本心)
본태양이요,
(本太陽)
질량이요,
이름을
붙여
하느님
이요,
부처님
상제님
깨달아
광대무량함을
보는
늘봄의
생활을
하면
몸에는
열기를
받아
몸이
건강하고
마음에는
빛을
마음이
밝아지므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들어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다툼으로
부터
놓여나
평화롭고
불평불만이
(不平不滿)
행복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짐
창조주와
피조물
떠나보낸자와
떠나온자의
만남이며
소통이요
영체와
육체가
쌍(雙)이
둘이
하나됨
이며
진리와
직거래함으로써
교회나
사원이
필요없어지며
종교적인
형식이나
틀이
깨어짐
깨달은
다음
생활하려고
하지
말고
생활하는
몸을
하다가
보면
필연코
알아차려
깨닫게
동정간에
텅비고,
고요하고,
깨끗하고,
화안함을
여의지
소원성취
만사형통
봄22.
본질의
질량과
물질의
질량
질량이란
(質量)
바탕
질(質)
자(字)와
헤아릴
량(量)
자(字)로
구성되어
있는바
이로
미루어
볼
때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물질만
질량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에도
질량의
구조가
있습니다.
본질,
영성,
정신의
바탕이란
무한허공이며
무한허공
가운데
꽉들어차
있는
광명이
헤아릴
량(量)자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본질
영성
정신의
질량을
한마디로
표현하여
바탕인
무한
허공을
광대하다고
(廣大)
하고
꽉
들어찬
광명의
부피와
무게가
없다는
뜻에서
무량하다고
(無量)
하여
광대무량
(廣大無量)
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본질의
질량
입니다.
바탕인
허공이
무한하게
크고
넓으나
거기에
가득찬
광명은
모양과
부피와
무게라는
량(量)이
없어
헤아림이
없고,
생각이
없어,
무심
(無心)
입니다.
이러한
본질인
무(無)의
질량이
현상인
유(有)의
물질로
나타나면서
한정된
바탕인
공간에
모양과
내용과
부피와
무게가
있는
유(有)의
질량으로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본질의
질량은
광대무량하고
(廣大無量)
물질의
질량은
협소유량
(狹小有量)
합니다.
본질의
질량은
무한공간에
가득찬
광명
(영성의
빛)
이고
물질의
질량은
유한공간에
가득찬
입자인
동시에
파장
입니다.
그러므로
무한하늘이
바탕이
되고
광명이
근본이
되어
태양이
만들어지고
순차적으로
별들이
만들어져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
천체를
운행하므로서
한
세계가
만들어지고
무량세계가
창조되고
텅빈
허공이
음(陰)이고
가득찬
광명이
양(陽)이
되어
이합집산으로
(離合集散)
음(陰)인
무생물과
양(陽)인
생물로
나누어지면서
만물을
방출하고
(放出)
회수
(回收)
합니다.
무(無)인
질량에서
유(有)인
질량으로
무에서
유로
유에서
무로
방출과
회수를
무시무종으로
(無始無終)
반복합니다.
바탕(質)이
무한하고
량(量)이
무량한
가운데
방출과
회수의
균형이
깨어지지
않으므로
본질의
질량은
부동하고
불변하여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생각을
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가운데에서도
텅비고
화안한
본질의
질량은
사라지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아
항존함을
(恒存)
봅니다.
이것을
보고
알아야
만물의
영장인
사람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참으로
철든
사람이
아닙니다.
이것이란
한마디로
무엇입니까?
텅비고
고요하고
깨끗하고
화안한
영성이요,
(靈性)
광대무량이요,
(廣大無量)
본심
(本心)
본태양이요,
(本太陽)
본질의
질량이요,
이름을
붙여
하느님
이요,
부처님
이요,
상제님
입니다.
본질의
질량을
깨달아
광대무량함을
보는
늘봄의
생활을
하면
몸에는
열기를
받아
몸이
건강하고
마음에는
빛을
받아
마음이
밝아지므로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들어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고
다툼으로
부터
놓여나
평화롭고
불평불만이
(不平不滿)
없어
행복합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짐
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떠나보낸자와
떠나온자의
만남이며
소통이요
영체와
육체가
쌍(雙)이
되어
둘이
하나됨
이며
진리와
직거래함으로써
교회나
사원이
필요없어지며
종교적인
형식이나
틀이
깨어짐
입니다.
본질의
질량을
깨달은
다음
생활하려고
하지
말고
생활하는
가운데
마음이
몸을
늘봄의
생활을
하다가
보면
필연코
본질의
질량을
보고
알아차려
깨닫게
되어
동정간에
텅비고,
고요하고,
깨끗하고,
화안함을
여의지
않아
소원성취
하고
만사형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