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179.
견성의
(見性)
의미와;
(意味)
목적
(目的)
견성이란
(見性)
하늘의
성품을
(性稟)
자기의
골통
속에서
감각의
눈으로
봄
입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리는
현상적인
(現象的)
외부의
하늘이
아니고
본질의
하늘,
태초의
하늘은
부동하고
(不動)
불변하므로
(不變)
「지금·여기」에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니
가슴속이나
뱃속을
내부
신경계통인
감각의
눈으로
더듬어보아도
텅
빈
감이
전혀
없고
오직
골통
속을
감지해보니
텅
빈
느낌이
있으므로
골통
속을
들여다
보려면
양쪽
눈썹과
눈썹
사이에
구멍이
뚫린
인당으로
(印堂)
들여다보고
또
보다가
보면
텅비어진
하늘이
(공간, space)
열리는
바
그
하늘을
줄기차게
끊어지지
않게
보고
또
보다가
보면
골통굴
(骨痛窟)
속의
작은
내면의
공간이
굴
어귀로
통한
외부의
거대한
공간과
통하여
있는
하나의
하늘임을
감각의
눈으로
보게
되면
가이(테두리)없는
무한의
하늘임을
견성하여
(見性)
자각하게
되고
텅
빈
무한의
하늘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명암일색의
(明暗一色)
빛이
존재하고
있음도
동시적으로
보게
되면
하늘(0)의
광명(1),
광명(1)의
하늘(0)을
분석적으로
보면
하늘을
바탕(0)이라고
보면
광명은
내용(1)이라고
볼
수
있으니
바탕과
내용은
이름만
다르지
실지로는
각각이
아닌
하나
일(一)이라고
할
것
입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보면
하나
일(一)이란
바탕과
내용이
둘이
아니라는
이치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하늘을
없을
무(無)라고
한다면
광명을
있을
유(有)라고
할
수
있는
바
결국
유(有)와
무(無)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
우주의
(space)
본질은
하늘의
광명이요,
광명의
하늘인지라
대(大)와
소(小),
유(有)와
무(無)가
각각이
아닌
하나로서
한통속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우주의
(space)
본질인
하늘의
성품을
(性稟)
감각의
눈으로
보면
견성한
(見性)
것
입니다.
여기서
테두리(가이)가
없는
하늘을
열고
발견하고
깨달았다는
의의는
(意義)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담벼락으로부터
(地獄)
석방된
(釋放)
느낌이
들어
언제나
무언가
답답하여
들판에
가보거나,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거나,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거나,
바다에
배를
타고
일주일씩이나
항해를
해보아도,
자기를
가두고
있던
담벼락을
(地獄)
허물지
못하고
풀지
못하였던
답답함에서
연유된
압박과
설움에서
한꺼번에
놓여나게
되는
것
입니다.
무한공간에
가득찬
명암일색의
(明暗一色)
빛을
본
다음
일상생활
가운데
그
빛을
「늘봄」하며
살면
새벽빛이나
노을빛을
볼
때와
같아서
태양의
빛에
눈이
부시지
않고
암흑을
볼
때의
두려움이나
답답함이
없어짐에
머리가
시원하고
상쾌하여
안락해지는
(安樂)
바
둘이
상대하던
대립
(對立)
갈등
(葛藤)
투쟁이
(鬪爭)
사라져
양자
(兩者)
간(間)에
균형과
(均衡, balance)
조화가
(調和, harmony)
있음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워서
허공인
(虛空)
무심이며
(無心)
늘
한결같은
한
마음,
일심인지라
(一心)
번뇌망상이
(煩惱妄想)
없어
안심입명하면서
(安心立命)
원만구족한
(圓滿具足)
행복을
누리는
정신이
(精神)
개벽된
(開闢)
사람이
되는
것
입니다.
또한
명암일색의
(明暗一色)
빛을
봄에
근본이
(根本)
둘이
아닌
이치를
(理致)
철저하게
봄으로서
밝을
명(明)과
어두울
암(暗),
낮과
밤,
착할
선(善)과
악할
악(惡)
바를
시(是)와
아닐
비(非)라고
하는
양극단으로
(兩極端)
벌어지기
이전의
분열이
(分裂)
본래
(本來)
없는
하나인
본질의
(本質)
이치를
(理致)
깨달아
원수가
(怨讐)
은인인
(恩人)
도리를
이해하고
(理解)
순복하기에
(順服)
이름에
인간에
대한
미움이
한순간이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간애,
(人間愛)
휴머니즘,
(humanism)
호연지기가
(浩然之氣)
살아나게
되니
천지만물
우주만유를
골통
속에
품은
무한하게
텅
빈
위대한
(偉大)
인간,
포용의
(包容)
인간,
가슴이
따뜻한
사랑과
연민의
(憐憫)
인간이
되어
우주의
주인이
자기에게
임재해
(臨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천지만물
우주만유
모두가
나의
소유물임을
알아서
원만구족하여
(圓滿具足)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추구하는
생각이
일절
일어나지
않아서
호연지기로서,
(浩然之氣)
조물주요,
(造物主)
창조주로서
(創造主)
오로지
우주창조의
섭리를
(攝理)
완수할
일편단심으로
(一片丹心)
지상천국을
(地上天國)
이
땅에
건설할
일념만
(一念)
간직하고
선천의
(先天)
신본주의에서
(神本主義)
후천의
(後天)
인본주의로
(人本主義)
인존의
(人尊)
시대를
열어
인간개벽에
(人間開闢)
성공함으로서
(成功)
우리
다
같이
우주창조의
목적인
(目的)
우주의
섭리를
(攝理)
완성합시다.
봄 179.
견성의
(見性)
의미와;
(意味)
목적
(目的)
견성이란
(見性)
하늘의
성품을
(性稟)
자기의
골통
속에서
감각의
눈으로
봄
입니다.
구름이
끼고
바람이
불고
눈비가
내리는
현상적인
(現象的)
외부의
하늘이
아니고
본질의
하늘,
태초의
하늘은
부동하고
(不動)
불변하므로
(不變)
「지금·여기」에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것이니
가슴속이나
뱃속을
내부
신경계통인
감각의
눈으로
더듬어보아도
텅
빈
감이
전혀
없고
오직
골통
속을
감지해보니
텅
빈
느낌이
있으므로
골통
속을
들여다
보려면
양쪽
눈썹과
눈썹
사이에
구멍이
뚫린
인당으로
(印堂)
들여다보고
또
보다가
보면
텅비어진
하늘이
(공간, space)
열리는
바
그
하늘을
줄기차게
끊어지지
않게
보고
또
보다가
보면
골통굴
(骨痛窟)
속의
작은
내면의
공간이
굴
어귀로
통한
외부의
거대한
공간과
통하여
있는
하나의
하늘임을
감각의
눈으로
보게
되면
가이(테두리)없는
무한의
하늘임을
견성하여
(見性)
자각하게
되고
텅
빈
무한의
하늘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명암일색의
(明暗一色)
빛이
존재하고
있음도
동시적으로
보게
되면
하늘(0)의
광명(1),
광명(1)의
하늘(0)을
분석적으로
보면
하늘을
바탕(0)이라고
보면
광명은
내용(1)이라고
볼
수
있으니
바탕과
내용은
이름만
다르지
실지로는
각각이
아닌
하나
일(一)이라고
할
것
입니다.
그러한
견지에서
보면
하나
일(一)이란
바탕과
내용이
둘이
아니라는
이치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하늘을
없을
무(無)라고
한다면
광명을
있을
유(有)라고
할
수
있는
바
결국
유(有)와
무(無)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
우주의
(space)
본질은
하늘의
광명이요,
광명의
하늘인지라
대(大)와
소(小),
유(有)와
무(無)가
각각이
아닌
하나로서
한통속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
입니다.
이렇게
우주의
(space)
본질인
하늘의
성품을
(性稟)
감각의
눈으로
보면
견성한
(見性)
것
입니다.
여기서
테두리(가이)가
없는
하늘을
열고
발견하고
깨달았다는
의의는
(意義)
자기를
둘러싸고
있던
담벼락으로부터
(地獄)
석방된
(釋放)
느낌이
들어
언제나
무언가
답답하여
들판에
가보거나,
산꼭대기에
올라가
보거나,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거나,
바다에
배를
타고
일주일씩이나
항해를
해보아도,
자기를
가두고
있던
담벼락을
(地獄)
허물지
못하고
풀지
못하였던
답답함에서
연유된
압박과
설움에서
한꺼번에
놓여나게
되는
것
입니다.
무한공간에
가득찬
명암일색의
(明暗一色)
빛을
본
다음
일상생활
가운데
그
빛을
「늘봄」하며
살면
새벽빛이나
노을빛을
볼
때와
같아서
태양의
빛에
눈이
부시지
않고
암흑을
볼
때의
두려움이나
답답함이
없어짐에
머리가
시원하고
상쾌하여
안락해지는
(安樂)
바
둘이
상대하던
대립
(對立)
갈등
(葛藤)
투쟁이
(鬪爭)
사라져
양자
(兩者)
간(間)에
균형과
(均衡, balance)
조화가
(調和, harmony)
있음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워서
허공인
(虛空)
무심이며
(無心)
늘
한결같은
한
마음,
일심인지라
(一心)
번뇌망상이
(煩惱妄想)
없어
안심입명하면서
(安心立命)
원만구족한
(圓滿具足)
행복을
누리는
정신이
(精神)
개벽된
(開闢)
사람이
되는
것
입니다.
또한
명암일색의
(明暗一色)
빛을
봄에
근본이
(根本)
둘이
아닌
이치를
(理致)
철저하게
봄으로서
밝을
명(明)과
어두울
암(暗),
낮과
밤,
착할
선(善)과
악할
악(惡)
바를
시(是)와
아닐
비(非)라고
하는
양극단으로
(兩極端)
벌어지기
이전의
분열이
(分裂)
본래
(本來)
없는
하나인
본질의
(本質)
이치를
(理致)
깨달아
원수가
(怨讐)
은인인
(恩人)
도리를
이해하고
(理解)
순복하기에
(順服)
이름에
인간에
대한
미움이
한순간이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인간애,
(人間愛)
휴머니즘,
(humanism)
호연지기가
(浩然之氣)
살아나게
되니
천지만물
우주만유를
골통
속에
품은
무한하게
텅
빈
위대한
(偉大)
인간,
포용의
(包容)
인간,
가슴이
따뜻한
사랑과
연민의
(憐憫)
인간이
되어
우주의
주인이
자기에게
임재해
(臨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천지만물
우주만유
모두가
나의
소유물임을
알아서
원만구족하여
(圓滿具足)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추구하는
생각이
일절
일어나지
않아서
호연지기로서,
(浩然之氣)
조물주요,
(造物主)
창조주로서
(創造主)
오로지
우주창조의
섭리를
(攝理)
완수할
일편단심으로
(一片丹心)
지상천국을
(地上天國)
이
땅에
건설할
일념만
(一念)
간직하고
선천의
(先天)
신본주의에서
(神本主義)
후천의
(後天)
인본주의로
(人本主義)
인존의
(人尊)
시대를
열어
인간개벽에
(人間開闢)
성공함으로서
(成功)
우리
다
같이
우주창조의
목적인
(目的)
우주의
섭리를
(攝理)
완성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