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75.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로 하면 크게 살아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유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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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75.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로 

하면 

크게 

살아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머리 

속인


골통


멍텅굴에

들어가 

앉아서


(窟)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툭 

터져 

하나인


무변허공을 

(無邊虛空)

보면


처음에는 

어둡다가

차차 

밝아져

화안해지면


무한 

공간에 

가득찬

무량광을 

(無量光)


아울러 

보게 

되는 

바 


이 

내면의 

하늘이


운행이 

되기 


이전의 

하늘인


태초의 

(太初)

하늘로서


본질,

본성,

본심, 

무심을 

본 

입니다.


여기에서

무한 

공간에 

해당하는


본성의 

(本性)

바탕이


암흑의 

공간이므로


죽음이 

되고


근본에 

(根本) 

해당하는


화안한 

공간이


삶이 

되므로


생사가 

(生死)

일여인 

(一如)

입니다.


본질적으로 

보면


밝을 

(明)인 

삶과


어두울 

(暗)인 

죽음이


분리된

(分離)

각각이 

(各各)

아니어서


명암일색이므로 

(明暗一色)

생사일체로서 

(生死一體)


사중생이요 

(死中生)

생중사이고 

(生中死)


암중명이고 

(暗中明)

명중암

(明中暗)

입니다.


여기서


가운데 

(中)이란 

말은


명암이나 

(明暗)

생사가 

(生死)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쏠리게 

되면


양자 

간에 


분열이 

일어나므로


하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양자

(兩者) 

(間)


균형과 

(均衡)

조화를 

(調和)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아둥바둥


살려는 

쪽으로 

기울어지면


하늘은 

나를

죽이는 

쪽으로 

밀어붙이고


내가 

죽는 

쪽으로 

나가면


하늘은 

나를

크게 

살리는 

방향으로

밀어붙여


생사간의 

(生死間)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여


하나인 

상태를 

보존하고자

하는 

까닭에


살려고 

하면


하늘이 

나를 

죽이려고 

하고


죽기로 

하면


하늘이 

나를 

살려주는

까닭은


생사지간에

균형과 

조화로


생사일여를

(生死一如) 

유지하려는 


이치가 

(理致) 

있기 

때문입니다.


생사는 

(生死)


둘이 

아닌 

하나이나


어두움인 

죽음이


바탕을 

이루는 

가운데


광명인 

(光明) 

삶이 


바탕인 


암흑의 

(暗黑)

공간과

공존하고 

(共存)

공유하여 

(共有)


지속적으로

하나인 

상태를 

유지하고자


균형을 

(均衡)

잡아


하나를 

존속시키기 

위해


하늘이 

조화를 

(造化)

부리는 

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정기를 

받으려면


「가만히 

있어봄」

으로


죽음 

쪽으로 

다가가야


천복을 

받게 

되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