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50.
천당극락
지상낙원을
어떻게
누리는가?
두뇌,
머리,
마음을
지속적으로
감각하면
다시
말하여
정신의
광명으로
비추어
생각의
일어남을
보고
알아차리고
주시하면
(注視)
생각이라는
그림자는
지속적으로
비치는
광명으로
인하여
그림자인
생각이
사라지면
생각이
텅빈
무심이
(無心)
되면서
깨어나는
바
여기에서
두뇌를
점유하고
(占有)
있던
마음
심(心)이
사라지고
물러간
자리에
본질이며
(本質)
영체인
(靈體)
정신이
(精神)
들어서게
되면
머리에
뚜껑이
사라져
두뇌
속의
공간과
두뇌
밖의
공간이
하나가
되어
공간적으로
무한한
가운데
어두운
암(暗)
가운데
중(中)
은은한
광명이
(光明)
암중명으로
(暗中明)
혼연일체
(渾然一體)
명암일색임을
(明暗一色)
정신의
속성인
(屬性)
감각으로
(感覺)
감지하면
(感知)
내면의
공간에
천지만물
(天地萬物)
우주만유가
(宇宙萬有)
몽땅
두뇌라는
공간에
다
들어와
포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자기가
우주의
주인이며
만물의
영장으로
(靈長)
위대한
(偉大)
존재임을
자각하게
(自覺)
됩니다.
그러므로
무심이
(無心)
머리
속에
들어선
것이
곧
정신이
(精神)
머리
속에
들어선
것
입니다.
정신은
본질인지라
본질의
특징은
운행되기
이전의
태초의
(太初)
하늘인지라
시간이
없고
시간이
부재하여
(不在)
시간이
멈춘
상태라
지난
과거도
없고
현재라는
것도
없고
오지
않은
미래도
없어
카메라로
사진
찍을
때
처럼
두두물물
(頭頭物物)
형형색색이
(形形色色)
지금
여기에
보이고
들리는
실존하는
(實存)
풍경과
(風景)
소리만이
포착되어
(捕捉)
「지금
여기」
라는
천당극락
(天堂極樂)
지상낙원에서
(地上樂園)
지복을
(至福)
누리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난
것은
이러한
지복
(至福)
이러한
낙(樂)을
누리며
살아보기
위함
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생각이
없다는
것
입니다.
생각이
없는
무심이면
(無心)
과거심이
(過去心)
없어
후회하고
자책할
일도
없고
미래심도
(未來心)
없어
근심
걱정
하거나
불안
공포에
떨
일도
없고
현재심도
(現在心)
없으니
서둘러
할
일도
없으니
텅빈
가운데
고요하여
한가와
여유를
누리고
할
일이
없으니
일
마친
사람이고
일
없는
사람이고
화안하여
보이고
들리는
산과
들과
강과
바다
모두가
아름다우니
지구에
와서
천지만물
대자연을
구경하고
관광하는
(觀光)
재미
끝이
없으니
아니
놀지를
못하리라.
오직
할
일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condition)
감각하는
일
하나만
하면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의
원동력인
(原動力)
정신력이
자동적으로
명암의
(明暗)
균형과
(均衡, balance)
조화로
(調和, harmony)
마음병을
치유하고
(治癒, healing)
온냉의
(溫冷)
균형과
(均衡, balance)
조화로
(調和, harmony)
몸병을
치유하여
무병장수하고
(無病長壽)
안녕하게
(安寧)
사는
것이
천당극락과
지상낙원을
누리는
것
입니다.
또한
정신이
들어서면
소원성취하고
만사형통인
바
정신이
하단전에
좌정하면
(坐定)
정신이
몸에게
「이랴」
하면
가고
「워」
하면
멈추어
고우와
(go)
스톱을
(stop)
자유자재하게
(自由自在)
되고
정신이
마음에게
생각을
내라고
하면
내고
내지
말라고
하면
내지
않아서
내
뜻대로
내
말을
잘
들으면
소원성취하고
만사형통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과
몸을
부리고
씀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이
소원성취이고
만사형통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
목표가
정해져야
목표달성
여부를
스스로
판별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을
오인하여
어쩌다가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고
견성이라고
오판해서는
안됩니다.
도(道)에
대한
미신을
(迷信)
모조리
비워야
참으로
비운
것으로
무한한
청정
(淸淨)
하늘,
본질의
(本質)
하늘을
보았다고
할
것
입니다.
마음을
자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을
때
여의주를
(如意珠)
얻었다고
합니다.
정신이
들어야
발현할
(發現)
수
있는
능력
입니다.
봄50.
천당극락
지상낙원을
어떻게
누리는가?
두뇌,
머리,
마음을
지속적으로
감각하면
다시
말하여
정신의
광명으로
비추어
생각의
일어남을
보고
알아차리고
주시하면
(注視)
생각이라는
그림자는
지속적으로
비치는
광명으로
인하여
그림자인
생각이
사라지면
생각이
텅빈
무심이
(無心)
되면서
깨어나는
바
여기에서
두뇌를
점유하고
(占有)
있던
마음
심(心)이
사라지고
물러간
자리에
본질이며
(本質)
영체인
(靈體)
정신이
(精神)
들어서게
되면
머리에
뚜껑이
사라져
두뇌
속의
공간과
두뇌
밖의
공간이
하나가
되어
공간적으로
무한한
가운데
어두운
암(暗)
가운데
중(中)
은은한
광명이
(光明)
암중명으로
(暗中明)
혼연일체
(渾然一體)
명암일색임을
(明暗一色)
정신의
속성인
(屬性)
감각으로
(感覺)
감지하면
(感知)
내면의
공간에
천지만물
(天地萬物)
우주만유가
(宇宙萬有)
몽땅
두뇌라는
공간에
다
들어와
포용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자기가
우주의
주인이며
만물의
영장으로
(靈長)
위대한
(偉大)
존재임을
자각하게
(自覺)
됩니다.
그러므로
무심이
(無心)
머리
속에
들어선
것이
곧
정신이
(精神)
머리
속에
들어선
것
입니다.
정신은
본질인지라
본질의
특징은
운행되기
이전의
태초의
(太初)
하늘인지라
시간이
없고
시간이
부재하여
(不在)
시간이
멈춘
상태라
지난
과거도
없고
현재라는
것도
없고
오지
않은
미래도
없어
카메라로
사진
찍을
때
처럼
두두물물
(頭頭物物)
형형색색이
(形形色色)
지금
여기에
보이고
들리는
실존하는
(實存)
풍경과
(風景)
소리만이
포착되어
(捕捉)
「지금
여기」
라는
천당극락
(天堂極樂)
지상낙원에서
(地上樂園)
지복을
(至福)
누리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난
것은
이러한
지복
(至福)
이러한
낙(樂)을
누리며
살아보기
위함
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생각이
없다는
것
입니다.
생각이
없는
무심이면
(無心)
과거심이
(過去心)
없어
후회하고
자책할
일도
없고
미래심도
(未來心)
없어
근심
걱정
하거나
불안
공포에
떨
일도
없고
현재심도
(現在心)
없으니
서둘러
할
일도
없으니
텅빈
가운데
고요하여
한가와
여유를
누리고
할
일이
없으니
일
마친
사람이고
일
없는
사람이고
화안하여
보이고
들리는
산과
들과
강과
바다
모두가
아름다우니
지구에
와서
천지만물
대자연을
구경하고
관광하는
(觀光)
재미
끝이
없으니
아니
놀지를
못하리라.
오직
할
일은
몸과
마음의
컨디션을
(condition)
감각하는
일
하나만
하면
무한하고
영원한
우주의
원동력인
(原動力)
정신력이
자동적으로
명암의
(明暗)
균형과
(均衡, balance)
조화로
(調和, harmony)
마음병을
치유하고
(治癒, healing)
온냉의
(溫冷)
균형과
(均衡, balance)
조화로
(調和, harmony)
몸병을
치유하여
무병장수하고
(無病長壽)
안녕하게
(安寧)
사는
것이
천당극락과
지상낙원을
누리는
것
입니다.
또한
정신이
들어서면
소원성취하고
만사형통인
바
정신이
하단전에
좌정하면
(坐定)
정신이
몸에게
「이랴」
하면
가고
「워」
하면
멈추어
고우와
(go)
스톱을
(stop)
자유자재하게
(自由自在)
되고
정신이
마음에게
생각을
내라고
하면
내고
내지
말라고
하면
내지
않아서
내
뜻대로
내
말을
잘
들으면
소원성취하고
만사형통한
것
입니다.
이와
같이
마음과
몸을
부리고
씀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이
소원성취이고
만사형통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여
목표가
정해져야
목표달성
여부를
스스로
판별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비운다는
것을
오인하여
어쩌다가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고
견성이라고
오판해서는
안됩니다.
도(道)에
대한
미신을
(迷信)
모조리
비워야
참으로
비운
것으로
무한한
청정
(淸淨)
하늘,
본질의
(本質)
하늘을
보았다고
할
것
입니다.
마음을
자재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을
때
여의주를
(如意珠)
얻었다고
합니다.
정신이
들어야
발현할
(發現)
수
있는
능력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