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129. 어째서 교(敎)와 선(禪)이 하나라고 할 것인가?

유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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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129. 


어째서 


(敎)와 

(禪)이 


하나라고 

할 

것인가?



불교에서는


언어문자로, 

(言語文字)

생각으로,


법을 

가르치는


교학과 

(敎學)


언어도단으로 

(言語道斷)


감각으로

법을 

가르치는


선학이 

(禪學)


대립하여


여태껏

승부가 

(勝負)

나지 

않고 

있는 


(敎)와 

(禪)

분열하여


둘로 

존재하지 

않고


교와 

선이 

하나로


더불어 

존재함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좌뇌의 

생각은


(敎)의 

도구로서


암기하고,

(暗記)

분석하고, 

(分析)

기억하고, 

(記憶)


추리하는 

(推理)

작용이 

있으므로


언어문자로

표현이 

가능하고


우뇌의 

감각은


(禪)의 

도구로서


텅빈 

광명으로 

비추어


주시하고, 

(注視)

직관하고, 

(直觀)

직감하고, 

(直感)

통찰하고, 

(洞察)

감각하는 

(感覺)


돌아봄으로


언어문자가

필요치 

않고


순간적으로

느끼어

간파하는 

(看破)

능력입니다.


우뇌의 

감각인


(禪)으로


언어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순간적으로

느껴 

알았다고는 

하지만 


그 

안것을


남들과 

나누어 

소통하려면


좌뇌의 

생각으로


(敎)


언어화 

개념화하지 

않으면


소통이 

불가능하므로


우뇌의 

감각인


(禪)


좌뇌의 

생각인


(敎)


따로 

떨어져 

제각각일 

때는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서로가 

힘을 

합쳐


하나로


상생을 

(相生)

하여야


의미가 

(意味) 

있다고 

할 

입니다.


좌뇌본위 

생각위주를


(敎)라고 

하면


우뇌본위 

감각위주는


(禪)이라고 

할 

것인즉


(敎)와 

(禪)으로


분립하여 

(分立)


다툴 

일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는 

(協力)


상호보완적인 

(相互補完的)

관계라고 

볼 


(敎)와 

(禪)이 


하나인


교선일체라고 

(敎禪一體)

하겠습니다.


감각으로 

순식간에


본질을 

파악한 

다음


생각으로

이치를 

세워


언어문자로

개념화 

이론화하여야


감각과 

생각이 

더불어

협력하고 

연결될 


(敎)와 

(禪)


하나가 

되어


상극이 

아닌

상생이 

될 

수 

있는 

입니다.


그러므로


개벽이란 

(開闢)


본질의 

하늘을


암흑의 

하늘과


광명의 

하늘로


두번 

연다는 

뜻입니다.


두번 

연 

사람이라야


우뇌의 

감각으로


회광반조로,

(廻光返照)

돌아봄으로,


찰라지간에

밤중인지 

대낮인지


대뜸 

파악한 

(把握)

내용을


좌뇌의 

생각으로

언어문자로 

(言語文字)


문법에 

(文法)

맞게


개념화

(槪念化)


이론화하여 

(理論化)


타인들과의 

의사소통에

자유자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서


불통을 

(不通)

극복하고


소통할 

(疏通) 

수 

있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