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20.
마음본위인
생각의
모드와
몸본위인
감각의
모드
마음
본위인
생각의
모드는
이원성인지라
(二元性)
갈까
말까라고
하는
이원성으로
(二元性)
맞서므로
양자간에
(兩者)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져
상극의
(相剋)
관계가
조성되므로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이고
몸의
속성인
몸의
감각으로
몸의
동정을
일일이
보고
알아차리고
감각하는
감각의
모드는
몸이
현재에
근거하고
(根據)
있으므로
과거나
미래라고
하는
가상공간에
근거한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는
관념적이라서
(觀念的)
허구적인대
(虛構的)
비하여
몸의
감각본위는
추우면
춥다고
느끼고
더우면
덥다고
느껴
단순하여
일원성이고
(一元性)
진실합니다.
(眞實)
그러므로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로
살면
허구적이고
(虛構的)
이원적이라서
(二元的)
맞서는
두
가지
생각끼리
경합을
(競合)
벌여
채택되지
(採擇)
못한
생각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능선길과
골짜기로
가는
두갈래
길에서
마음이
결정한
길을
따라
걸으면
회한이
(悔恨)
남지만
감각으로
몸인
'다리'가
결정한
길을
따라가면
아무런
회한이
(悔恨)
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천년
계속된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를
바꾸어
몸본위,
감각모드로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는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方便)
생각을
중시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던
것
입니다.
이제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핵(核)이
계발된
시점에서
물질을
개벽하면
행복하리라는
기대는
일장춘몽임이
(一場春夢)
드러났습니다.
그리하여
선천이
(先天)
끝나고
정신을
개벽해야할
후천을
(後天)
맞아
영육쌍전을
(靈肉雙全)
복원하여야
(復元)
할
시점에서
(始點)
육감,
(肉感)
몸의
감각을
계발하는
것이
영감계발의
(靈感啓發)
길이므로
마음이
몸의
동정을
(動靜)
지시하고
(指示)
명령하던
(命令)
체계를
(體系)
그만두고
몸의
동정의
(動靜)
문제는
몸
자체의
감각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것이
감각의
모드로서
몸이
지닌
고유의
지성을
발현함이요
나아가서
정신의
지혜로
몸을
부리고
쓰는
영감계발일
것
입니다.
그리하여
육감이
(肉感)
계발되고
영감이
(靈感)
계발되면
생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인식의
(認識)
능력
대신
눈에
안보이는
내면이나
(內面)
미래를
(未來)
투시하여
(透視)
직관하고,
(直觀)
인지하고,
(認知)
예견하는
(豫見)
능력이
생겨
직관지가
(直觀智)
발현합니다.
직관지가
발현하면
무한히
크고
둥근
내면의
하늘,
내면의
거울을
늘봄의
생활을
하여
명암이
(明暗)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고
(共有)
공존하여
(共存)
균등한
(均等)
하나로
조화로운
모습을
늘
보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아서
바르고
둥근
사람이
되고,
묘하게
몸과
마음의
동정을
감각하여
보고
알아차리는
묘관찰지가
(妙觀察智)
생기고,
사전에
(事前)
생각으로
준비하였다가
행동하는
생각의
모드가
아니고
그때
그때
몸의
감각에
의하여
몸의
동정을
지각하는
감각의
모드로
일을
당하여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성소작지가
(成所作智)
생기고,
밝음과
어두움,
명암
(明暗)
둘이
묘하게
하나로
어울려
명(明)과
암(暗)
사이에
대소와
(大小)
유무가
(有無)
없는
평등한
도리를
보는
평등성지가
(平等性智)
발현
(發現)
됩니다.
봄20.
마음본위인
생각의
모드와
몸본위인
감각의
모드
마음
본위인
생각의
모드는
이원성인지라
(二元性)
갈까
말까라고
하는
이원성으로
(二元性)
맞서므로
양자간에
(兩者)
대립
갈등
투쟁이
벌어져
상극의
(相剋)
관계가
조성되므로
스트레스가
생기기
마련이고
몸의
속성인
몸의
감각으로
몸의
동정을
일일이
보고
알아차리고
감각하는
감각의
모드는
몸이
현재에
근거하고
(根據)
있으므로
과거나
미래라고
하는
가상공간에
근거한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는
관념적이라서
(觀念的)
허구적인대
(虛構的)
비하여
몸의
감각본위는
추우면
춥다고
느끼고
더우면
덥다고
느껴
단순하여
일원성이고
(一元性)
진실합니다.
(眞實)
그러므로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로
살면
허구적이고
(虛構的)
이원적이라서
(二元的)
맞서는
두
가지
생각끼리
경합을
(競合)
벌여
채택되지
(採擇)
못한
생각은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능선길과
골짜기로
가는
두갈래
길에서
마음이
결정한
길을
따라
걸으면
회한이
(悔恨)
남지만
감각으로
몸인
'다리'가
결정한
길을
따라가면
아무런
회한이
(悔恨)
남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천년
계속된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를
바꾸어
몸본위,
감각모드로
바꾸어야
합니다.
마음본위,
생각의
모드는
물질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方便)
생각을
중시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던
것
입니다.
이제
스마트폰이
발명되고
핵(核)이
계발된
시점에서
물질을
개벽하면
행복하리라는
기대는
일장춘몽임이
(一場春夢)
드러났습니다.
그리하여
선천이
(先天)
끝나고
정신을
개벽해야할
후천을
(後天)
맞아
영육쌍전을
(靈肉雙全)
복원하여야
(復元)
할
시점에서
(始點)
육감,
(肉感)
몸의
감각을
계발하는
것이
영감계발의
(靈感啓發)
길이므로
마음이
몸의
동정을
(動靜)
지시하고
(指示)
명령하던
(命令)
체계를
(體系)
그만두고
몸의
동정의
(動靜)
문제는
몸
자체의
감각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것이
감각의
모드로서
몸이
지닌
고유의
지성을
발현함이요
나아가서
정신의
지혜로
몸을
부리고
쓰는
영감계발일
것
입니다.
그리하여
육감이
(肉感)
계발되고
영감이
(靈感)
계발되면
생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인식의
(認識)
능력
대신
눈에
안보이는
내면이나
(內面)
미래를
(未來)
투시하여
(透視)
직관하고,
(直觀)
인지하고,
(認知)
예견하는
(豫見)
능력이
생겨
직관지가
(直觀智)
발현합니다.
직관지가
발현하면
무한히
크고
둥근
내면의
하늘,
내면의
거울을
늘봄의
생활을
하여
명암이
(明暗)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고
(共有)
공존하여
(共存)
균등한
(均等)
하나로
조화로운
모습을
늘
보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아서
바르고
둥근
사람이
되고,
묘하게
몸과
마음의
동정을
감각하여
보고
알아차리는
묘관찰지가
(妙觀察智)
생기고,
사전에
(事前)
생각으로
준비하였다가
행동하는
생각의
모드가
아니고
그때
그때
몸의
감각에
의하여
몸의
동정을
지각하는
감각의
모드로
일을
당하여
즉각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성소작지가
(成所作智)
생기고,
밝음과
어두움,
명암
(明暗)
둘이
묘하게
하나로
어울려
명(明)과
암(暗)
사이에
대소와
(大小)
유무가
(有無)
없는
평등한
도리를
보는
평등성지가
(平等性智)
발현
(發現)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