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31.
자기
안에
있는
무한하고
영원한
본질
깨닫기
천지만물
우주만유의
근원인
우주정신은
나의
내면에
있습니다.
그것을
우주정신
이라고
합니다.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자면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과
안으로
향하는
구심력
이
두개의
맞서는
힘에서
구심력이
원심력을
이겨야
중심이
잡히어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원운동으로
무궁무진하게
돌아가
공간적으로
무한한
가운데
시간적으로
영원한
본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심력을
발동하려면
마음이
몸의
상태와
움직임을
늘
감각하여
중심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이
이루어져
두개의
상반된
힘이
하나가
되어
집중력이
이루어지고
일심이
(一心)
이루어져야
테두리가
없는
허공성,
제로(0),
무심에
(無心)
이르러
본질
영성
정신을
깨닫게
됩니다.
이
내면적인
영성이
바탕이
되고
근본이
되어
외면적으로
세상만사가
생겨
납니다.
본질이
원인이
되어
현상이라는
결과가
존재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야
제로에
거슬러
닿습니다.
제로에서
현상계로
나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하나를
거쳐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몸을
늘봄하여
집중력을
길러야
합니다.
제로란
허공성이요
침묵성이요
청정성이요
광명성입니다.
텅비었기에
고요하고
깨끗하며
깨끗하기에
광이
(光)
나서
텅빈
가운데
광명으로
꽉
차있습니다.
이것을
일러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고
말합니다.
공간적으로
무한하기에
풍요하여
부족함이
없고
무한한
공간에
균등하게
꽉
들어찬
은미한
광명이
사그라지지
않으므로
부동하고
불변합니다.
진리는
텅비고
고요하고
맑고
밝은
가운데
텅비고
가득참이
둘이면서
하나로
균형이
있고
조화롭습니다.
우리는
집중력을
통하여
일심을
통하여
우리들
내면에
잠재된
본심에
가
닿아
본질인
본심
천성을
회복하여
평소에
넉넉하고
고요하고
맑고
밝은
안정된
마음을
견지합니다.
본심은
정적이므로
(靜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본심에서
발로된
생각이나
언어
행동을
선이라고
(善)
하면
본심을
상실한
가운데
발해진
생각이나
언어
행동을
악이라고
(惡)
합니다.
본심에서
표출하려면
집중력
일심이
있어야
합니다.
집중력,
일심,
한마음이
되어야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생각을
구사할
수
있어
선을
(善)
행하여
풍요와
건강과
행복을
누리고
두개의
상극하는
에너지가
작용하는
이원성인
두마음으로는
파괴적이고
소비적이
되어
악(惡)을
행하여
결핍과
질병과
불행에
시달리게
됩니다.
본심을
깨달아
회복하면
이미
더
구할
것이
없는지라
목적을
추구하되
목표지향적이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과정
하나
하나를
즐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참된
성공이라고
할
것
입니다.
본심을
깨달으면
빛으로
충만하여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아
우울한
기색이
없고
텅비어
모든
것을
수용하고
담을
수
있어서
넉넉하고
풍요하며
맑고
깨끗하고
순수하여
꺼리낌이
없어
당당하고
막힌
데가
없어
툭터져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평소에
항상
이러한
정신을
견지하면
몸에는
건강이
마음에는
화평이
물질적으로는
풍요가
따라올
것
입니다.
본질을
깨달아
지니면
성격이
달라지고
기질
체질이
달라지고
능력이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지고
의식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집니다.
영성인
본질을
깨닫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
평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봄31.
자기
안에
있는
무한하고
영원한
본질
깨닫기
천지만물
우주만유의
근원인
우주정신은
나의
내면에
있습니다.
그것을
우주정신
이라고
합니다.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자면
밖으로
향하는
원심력과
안으로
향하는
구심력
이
두개의
맞서는
힘에서
구심력이
원심력을
이겨야
중심이
잡히어
조화와
균형이
이루어지면서
원운동으로
무궁무진하게
돌아가
공간적으로
무한한
가운데
시간적으로
영원한
본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구심력을
발동하려면
마음이
몸의
상태와
움직임을
늘
감각하여
중심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이
이루어져
두개의
상반된
힘이
하나가
되어
집중력이
이루어지고
일심이
(一心)
이루어져야
테두리가
없는
허공성,
제로(0),
무심에
(無心)
이르러
본질
영성
정신을
깨닫게
됩니다.
이
내면적인
영성이
바탕이
되고
근본이
되어
외면적으로
세상만사가
생겨
납니다.
본질이
원인이
되어
현상이라는
결과가
존재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야
제로에
거슬러
닿습니다.
제로에서
현상계로
나오기
위해서도
반드시
하나를
거쳐야
합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몸을
늘봄하여
집중력을
길러야
합니다.
제로란
허공성이요
침묵성이요
청정성이요
광명성입니다.
텅비었기에
고요하고
깨끗하며
깨끗하기에
광이
(光)
나서
텅빈
가운데
광명으로
꽉
차있습니다.
이것을
일러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고
말합니다.
공간적으로
무한하기에
풍요하여
부족함이
없고
무한한
공간에
균등하게
꽉
들어찬
은미한
광명이
사그라지지
않으므로
부동하고
불변합니다.
진리는
텅비고
고요하고
맑고
밝은
가운데
텅비고
가득참이
둘이면서
하나로
균형이
있고
조화롭습니다.
우리는
집중력을
통하여
일심을
통하여
우리들
내면에
잠재된
본심에
가
닿아
본질인
본심
천성을
회복하여
평소에
넉넉하고
고요하고
맑고
밝은
안정된
마음을
견지합니다.
본심은
정적이므로
(靜的)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본심에서
발로된
생각이나
언어
행동을
선이라고
(善)
하면
본심을
상실한
가운데
발해진
생각이나
언어
행동을
악이라고
(惡)
합니다.
본심에서
표출하려면
집중력
일심이
있어야
합니다.
집중력,
일심,
한마음이
되어야
건설적이고
생산적으로
생각을
구사할
수
있어
선을
(善)
행하여
풍요와
건강과
행복을
누리고
두개의
상극하는
에너지가
작용하는
이원성인
두마음으로는
파괴적이고
소비적이
되어
악(惡)을
행하여
결핍과
질병과
불행에
시달리게
됩니다.
본심을
깨달아
회복하면
이미
더
구할
것이
없는지라
목적을
추구하되
목표지향적이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과정
하나
하나를
즐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성공과
실패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렇게
되어야
참된
성공이라고
할
것
입니다.
본심을
깨달으면
빛으로
충만하여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아
우울한
기색이
없고
텅비어
모든
것을
수용하고
담을
수
있어서
넉넉하고
풍요하며
맑고
깨끗하고
순수하여
꺼리낌이
없어
당당하고
막힌
데가
없어
툭터져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평소에
항상
이러한
정신을
견지하면
몸에는
건강이
마음에는
화평이
물질적으로는
풍요가
따라올
것
입니다.
본질을
깨달아
지니면
성격이
달라지고
기질
체질이
달라지고
능력이
달라지고
인격이
달라지고
의식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집니다.
영성인
본질을
깨닫지
않고서는
결코
자유
평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