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73.
무문관
제 23칙
불사선악
(不思善惡)
본칙:
육조
그
때에
명상좌가
쫓아
대유령에
다달음에
육조는
명상좌를
보고
즉시
의발(衣鉢)을
바위에
던지며
말하기를
이
의발은
신(信)을
표하는
것인대
완력으로
다툴
것인가?
그대가
가져가려면
가져가라!
명이
들려고
하니
산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는지라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명이
말하기를
내가
법을
구하려고
왔지
의발
때문은
아닙니다.
원컨대
행자(육조)는
가르쳐
주소서!
육조
말하기를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이러할
때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면목
인고?
명이
이
말에
크게
깨달아
전신에
땀이
흐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묻기를
아까
말씀하신
비밀스러운
뜻
말고
다른
의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조
말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설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대가
만약
자기면목을
돌이켜
보면
비밀은
그대에게
있느니라.
명이
말하기를
내가
황매(오조)
휘하에
있으면서
대중과
같이
따랐으나
실은
아직
나의
면목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가르침을
받아
깨치니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차고
따뜻한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행자는
나의
스승입니다.
육조
말하기를
그대가
진정
그렇다면
나와
그대와
함께
황매를
스승으로
섬길지니
잘
보호하고
간직하라.
이
일화는
5조
황매문하에서
일자무식
혜능이
인가를
받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의
일입니다.
생각의
모드는
두가지인
선악
이분법입니다.
감각의
모드로
전환하려면
선도
생각지
않고
악도
생각지
않는
오직
한
생각
일념으로
돌아갈
때
감각의
모드로
전환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깨닫게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야
제로에
당도합니다.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도
하나를
거쳐야
하고
현상으로
내려
올
때도
하나를
거쳐
둘로
나타납니다.
육조가
설한
것은
하나를
거쳐
제로에
당도하게
하지
않고
과일을
껍질도
벗기고
씨도
빼낸
다음
한
입에
털어넣어
준
격입니다.
텅빈
자리를
보기는
쉬우나
일심의
양성이
부족하면
부리고
씀에
있어서
막히어
능수능란하지
못합니다.
텅빈
자리를
보았다고
공부가
끝이
아닙니다.
문제는
선악
두가지로
벌어지는
마음을
한가지로
걷어잡는
일심의
실력이
있어야
사물의
핵심을
잡아
곁가지로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텅빈
것은
단순한
제로가
아닙니다.
하나이면서
하나마져
없는
제로일
때
진공(眞空)
입니다.
그러므로
텅빈
무심을
견성(見性)하고
일심을
양성(養性)하여야
자유자재한
솔성(率性)이
이루어집니다.
봄73.
무문관
제 23칙
불사선악
(不思善惡)
본칙:
육조
그
때에
명상좌가
쫓아
대유령에
다달음에
육조는
명상좌를
보고
즉시
의발(衣鉢)을
바위에
던지며
말하기를
이
의발은
신(信)을
표하는
것인대
완력으로
다툴
것인가?
그대가
가져가려면
가져가라!
명이
들려고
하니
산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는지라
깜짝
놀라
벌벌
떨면서
명이
말하기를
내가
법을
구하려고
왔지
의발
때문은
아닙니다.
원컨대
행자(육조)는
가르쳐
주소서!
육조
말하기를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
이러할
때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면목
인고?
명이
이
말에
크게
깨달아
전신에
땀이
흐르고
눈물을
흘리면서
묻기를
아까
말씀하신
비밀스러운
뜻
말고
다른
의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육조
말하기를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하여
설한
것은
비밀이
아니다.
그대가
만약
자기면목을
돌이켜
보면
비밀은
그대에게
있느니라.
명이
말하기를
내가
황매(오조)
휘하에
있으면서
대중과
같이
따랐으나
실은
아직
나의
면목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가르침을
받아
깨치니
사람들이
물을
마시고
차고
따뜻한
것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행자는
나의
스승입니다.
육조
말하기를
그대가
진정
그렇다면
나와
그대와
함께
황매를
스승으로
섬길지니
잘
보호하고
간직하라.
이
일화는
5조
황매문하에서
일자무식
혜능이
인가를
받고
남쪽으로
내려오는
중의
일입니다.
생각의
모드는
두가지인
선악
이분법입니다.
감각의
모드로
전환하려면
선도
생각지
않고
악도
생각지
않는
오직
한
생각
일념으로
돌아갈
때
감각의
모드로
전환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깨닫게
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야
제로에
당도합니다.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도
하나를
거쳐야
하고
현상으로
내려
올
때도
하나를
거쳐
둘로
나타납니다.
육조가
설한
것은
하나를
거쳐
제로에
당도하게
하지
않고
과일을
껍질도
벗기고
씨도
빼낸
다음
한
입에
털어넣어
준
격입니다.
텅빈
자리를
보기는
쉬우나
일심의
양성이
부족하면
부리고
씀에
있어서
막히어
능수능란하지
못합니다.
텅빈
자리를
보았다고
공부가
끝이
아닙니다.
문제는
선악
두가지로
벌어지는
마음을
한가지로
걷어잡는
일심의
실력이
있어야
사물의
핵심을
잡아
곁가지로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텅빈
것은
단순한
제로가
아닙니다.
하나이면서
하나마져
없는
제로일
때
진공(眞空)
입니다.
그러므로
텅빈
무심을
견성(見性)하고
일심을
양성(養性)하여야
자유자재한
솔성(率性)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