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74.
진리는
진화가 맞느냐?
창조가 맞느냐?
진리의
본체는
하나인
동시에
제로입니다.
제로라고만
하면
창조설이
맞지만
동시에
하나인
고로
일심은
양성이
가능하므로
진화설이
맞는
측면도
있습니다.
진리를
창조냐
진화냐라고
하는
양극단적으로
택일하는
것은
생각의
모드입니다.
생각의
모드는
음양이
상극하므로
그렇게
맞서기
마련입니다.
감각의
모드에서는
음양으로
벌어지기
이전의
하나인지라
하나에서는
음양이
상생하므로
진화하면서
창조한다는
것을
감지하여
양극단의
주장이
대립
갈등
투쟁하지
않고
조화통일이
이루어집니다.
무심
자체는
진화하지
않지만
일심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적으로
일심의
능력은
진보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제로
무심은
그
자체에
플러스적인
광명과
마이너스적인
텅빔이
아울어져
제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하나인
측면에서
보면
진화라고
볼
수도
있고
제로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창조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해결을
보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상입니다.
성리(性理)
성품에
대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봄74.
진리는
진화가 맞느냐?
창조가 맞느냐?
진리의
본체는
하나인
동시에
제로입니다.
제로라고만
하면
창조설이
맞지만
동시에
하나인
고로
일심은
양성이
가능하므로
진화설이
맞는
측면도
있습니다.
진리를
창조냐
진화냐라고
하는
양극단적으로
택일하는
것은
생각의
모드입니다.
생각의
모드는
음양이
상극하므로
그렇게
맞서기
마련입니다.
감각의
모드에서는
음양으로
벌어지기
이전의
하나인지라
하나에서는
음양이
상생하므로
진화하면서
창조한다는
것을
감지하여
양극단의
주장이
대립
갈등
투쟁하지
않고
조화통일이
이루어집니다.
무심
자체는
진화하지
않지만
일심은
사람마다
다르고
시간적으로
일심의
능력은
진보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제로
무심은
그
자체에
플러스적인
광명과
마이너스적인
텅빔이
아울어져
제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하나인
측면에서
보면
진화라고
볼
수도
있고
제로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면
창조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종교와
과학이
첨예하게
대립하여
해결을
보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현상입니다.
성리(性理)
성품에
대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