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64. 무문관 제 16칙 종성칠조(鐘聲七條)

유종열
조회수 13

 


봄64.

무문관 

제 16칙 


종성칠조

(鐘聲七條)



본칙:

 

운문스님이 

묻기를

세계가 

이렇게 광활한데

무엇 때문에

종소리 나는데

(가사)을 입는고?

 

 

이 

생각 

저 

생각


궁리와 

검색을 

통하여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이


하나로 

뭉쳐진

의문을 

통해


의문을 

피하지 

않는 

가운데


의문을 

지속하여


의문이 

사라진


평상심,

(平常心)

무심,

(無心)

정신을 

(精神)

깨달으셨습니까?

 

감각을 

활짝 

열어


한 

생각 

의문마져 

사라져

끝간데 

없이 

펼쳐진


무한성 

영원성 

광명성


본질

정신을


깨달으셨나요?

 

그것을 

깨달았다면

분명 

현상적으로

종소리를 

듣고 

옷을 

입었건만


본질적으로는

종소리를 

듣고 

옷을 

입은

흔적자취가 

없을 

입니다.

 

흔적 

자취가 

없을 


세계가 

무한한 

공간성 

광명성 

가운데


건립하고 

있음을 

알게 

될 

입니다.

 

생각의 

모드에서는


생각이

육체의 

속성인지라


생각이나 

오감을 

통해서는

정신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시간 

공간에 

속박당하는

생각의 

모드에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고


문제가 

그칠 

날이 

없습니다.

 

현상적인 

문제를

맞이하여

의문이 

생기고

의문이 

순일무잡하게

(純一無雜) 

지속되기만 

하면


생각의 

모드가

감각의 

모드(오감의 원대궁, 순수지각)

즉각 

전환하여


평상심 

무심 

정신을 


깨닫게

됩니다.

 

의문을

통하여

생각이 

원을 

풀고


감각에게

바통을 

넘겨주어


감각이 

생각을 

이기고

살아나는

과정입니다.

 

아침에

모닝콜 

소리를 

듣고

왜 

옷을 

입는가? 

라는

말로 

바꾸어


의문을 

걸어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지로

부딪쳐

의문을 

발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으로 

이거다라고

어떤 

결론을

내렸다고

하여도


그것은 

현상인지라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잊혀지고

말 

입니다.

 

문제는


의문이 

걸리지 

않는 

입니다.


의문이

걸리지 

않는 

것은


생각이 

발전하여

사색의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였기

때문

입니다.

 

생각은

자기의

몫을 

다하여


자기의 

할 

일을 

다하여야


비로서

감각에게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러므로

봄나라 

책 12권을

통하여

성리연마에 

매진하여


잡다한 

생각의 

차원을

일심의 

사색의 

차원으로

올려놓아야 

합니다.

 

생각이

극에 

이르러야


일심(의단:疑團)이 

발로되어

지속될 


감각의 

하늘이 

열려


만사만리의 

근본이요

바탕인


무심

정신을 


단박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