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68. 무문관 제 19칙 평상시도(平常是道)

유종열
조회수 15


봄68. 

무문관 

제 19칙 


평상시도

(平常是道)



본칙:


남전스님에게

어느 때 

조주가 

묻기를


도란 

무엇입니까?


남전스님이

대답하기를


평상심이

라고 

하였다.


조주 

말하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남전이 

말하기를


생각으로

알려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


조주가

말하기를


알려고

하지 

않으면

이해가 

됩니까?


남전이

말하기를


도는

생각으로 

아는데 

속하지도 

않고


생각으로 

모르는데도 

속하지 

않는다.


생각으로 

알려고 

하면 

감각을 

놓침이고


생각으로 

모른다는

것은 

멍청함이다.


만약 

생각을 

넘어 


감각이 

활짝 

열리면


오직 

태허와 

같아서 


툭 

터져 

확연하리니


무엇 

때문에 

굳이 


시비를 

논할 

것인가?


조주가 

이 

말에 

문득 

깨달았다.



생각모드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도가 

하늘 

저 

멀리 

있거나


산 

속 

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전스님은

도가 

아주 

가까운

일상생활 

가운데 

있는


한결같고 

변하지 

않는


감각

순수의식

평상

(平常心)

이라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등하불명

(燈下不明)

으로


깨닫기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정신이 

없는 

사람은 

없고


정신이 

평상심이므로

언제 

어디서나 

깨달을 

있습니다.


정신의 

속성은 

감각이고


육체의 

속성은 

생각이므로


정신을 

깨달으려면


생각에게 

억눌린

감각을


생각을 

하나로 

모아


감각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정신을 

체라고 

하면


육체는 

용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체와 

용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체 

가운데 

용, 


용 

가운데 

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일러


평상심

이라고 

부른 

입니다.


우리는 


정신만으로 

살 

수 

없고


육체만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정신이 

주가 

되어


육체를 

부리고 

쓰는 

도리를


한마디로

평상심이라고 

부른 

입니다.


평상심은


정신이 

육체를 

감각하는


일심이

지속될 


일심이면서 

무심인 

평상심을


즉각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각 

깨닫지 

못하고

묻고 

물어 


힌트에 

의거하여


겨우

평상심을 

긍정한 

정도라면


더욱 

더 

노력하여


확철대오

(廓徹大悟)

하여야 

합니다.


확철대오하지 

못하면


일심의

힘이 

부족하여


경계를 

만나 

흐트러지고 

물들어


평상심을 

잃게 

되어


인생고로부터

해탈하지 

못합니다.


평상심에서는

생각의

먼지와

때인


집착과 

욕심이

텅비어 

깨끗하여


빛이 

납니다.


마루에

앉은 

때와 

먼지를

깨끗이

닦으면


마루가

화안하게

빛이

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도는 

알고 

보면


특별한 

이거나


기이한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아무것도

아닌


평상심

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평상심을

만나면

심심하다고 

느끼고


아는 

사람은

한가하고 

여유만만하여

편안함을

느낍니다.


생각의

모드냐


감각의 

모드냐의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