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58. 경계(境界)에서 다스림
봄58.
경계(境界)에서
다스림
본연의
자기를
깨달으려면
현상의
자기가
사라져야
한다.
깨달아도
경계를
만나면
한
생각
판단
평가
심판이
올라온다.
이때에
올라옴을
생각을
일으켜
부정하고
거부하면
안된다.
그것은
심판에
대한
선악관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올라오는
대하여
꼬리를
물고
심판을
내는
대신
일어난
보고
알아차림으로써
순간적으로
경험을
하고,
체험을
하면
일단락이
되어
더이상
마음에
남지
않아서
텅빈
자기로
돌아간다.
해가
뜨면
별들은
자취를
감추는
도리이다.
깨닫고
나면
경계
가운데서도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이다.
가운데
일어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중생이
부처이고
부처가
중생인
깨달으나
못
일어남은
다
같다.
단지
것은
그
생각에
선악시비를
일으키면
자기
맘에
남게
되고
경험하고
체험하게
되면
자기의
마음이
깨끗이
닦여진다는
것이
다르다.
당해
홍로점설이
(紅爐點雪)
이루어지면
다스림이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스리지
못함이다.
2010. 4. 21
봄58.
경계(境界)에서
다스림
본연의
자기를
깨달으려면
현상의
자기가
사라져야
한다.
본연의
자기를
깨달아도
경계를
만나면
한
생각
판단
평가
심판이
올라온다.
이때에
한
생각
올라옴을
한
생각을
일으켜
부정하고
거부하면
안된다.
그것은
판단
평가
심판에
대한
선악관이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올라오는
판단
평가
심판에
대하여
꼬리를
물고
판단
평가
심판을
내는
대신
일어난
한
생각을
보고
알아차림으로써
순간적으로
경험을
하고,
체험을
하면
일단락이
되어
더이상
마음에
남지
않아서
텅빈
본연의
자기로
돌아간다.
해가
뜨면
별들은
자취를
감추는
도리이다.
본연의
자기를
깨닫고
나면
경계
가운데서도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는
잘못된
것이다.
경계
가운데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중생이
부처이고
부처가
중생인
도리이다.
깨달으나
못
깨달으나
한
생각이
일어남은
다
같다.
단지
다른
것은
그
한
생각에
대하여
꼬리를
물고
선악시비를
일으키면
그
한
생각이
자기
맘에
남게
되고
그
한
생각을
보고
알아차림으로써
경험하고
체험하게
되면
자기의
마음이
깨끗이
닦여진다는
것이
다르다.
경계를
당해
홍로점설이
(紅爐點雪)
이루어지면
본연의
자기가
현상의
자기를
다스림이다.
경계를
당해
홍로점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본연의
자기가
현상의
자기를
다스리지
못함이다.
2010.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