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48.
눈으로
듣고
귀로
보자
<100일
정진
4차>
달마의
눈을
양이라면
부처님의
귀는
음이다.
눈과
귀는
오감
중의
으뜸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다.
본연의
자기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귀를
열어
무한한
공간을
열고
눈을
부릅떠
몸과
마음의
발호를
단박
제압하여
평정하여야
적적성성한
(寂寂惺惺)
정체성과
주체성이
유지된다.
동중
수행에는
심장을
찍고
귀만
열어도
정체성이
금방
드러나지만
오랫동안
앉아서
하는
정중
수행에서
감각을
집중적으로
계발하기
위해서는
눈을
부릅뜨는
수행을
병행해주어야
몸과
마음을
조복
받을
수
있다.
생각으로서는
몸과
마음을
조복
받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서로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형국인지라
엎치락
뒤치락
싸우다가
볼일
다
본다.
그러므로
감각을
활짝
열어
정신이
일도가
되어야
생각과
아픔
몸과
마음이
다스려진다.
정신이
차려지면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는
경지가
무엇인지
수긍이
간다.
이렇게
100일
정진을
하면
정체성과
주체성을
증득하여
명실상부한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탈바꿈하여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완성,
삶의
완성,
사랑의
완성을
기하여
소원성취하고
만사형통한다.
봄48.
눈으로
듣고
귀로
보자
<100일
정진
4차>
달마의
눈을
양이라면
부처님의
귀는
음이다.
눈과
귀는
오감
중의
으뜸으로
쌍벽을
이루고
있다.
본연의
자기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면
귀를
열어
무한한
공간을
열고
눈을
부릅떠
몸과
마음의
발호를
단박
제압하여
평정하여야
적적성성한
(寂寂惺惺)
정체성과
주체성이
유지된다.
동중
수행에는
심장을
찍고
귀만
열어도
정체성이
금방
드러나지만
오랫동안
앉아서
하는
정중
수행에서
감각을
집중적으로
계발하기
위해서는
눈을
부릅뜨는
수행을
병행해주어야
몸과
마음을
조복
받을
수
있다.
생각으로서는
몸과
마음을
조복
받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서로
멱살을
잡거나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형국인지라
엎치락
뒤치락
싸우다가
볼일
다
본다.
그러므로
감각을
활짝
열어
정신이
일도가
되어야
생각과
아픔
몸과
마음이
다스려진다.
정신이
차려지면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는
경지가
무엇인지
수긍이
간다.
이렇게
100일
정진을
하면
정체성과
주체성을
증득하여
명실상부한
몸과
마음의
주인으로
탈바꿈하여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는
사람의
완성,
삶의
완성,
사랑의
완성을
기하여
소원성취하고
만사형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