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26. 현실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
봄26.
현실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
눈을
뜨자마자
라디오를
듣고
테레비를
보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등하교
출퇴근을
한다.
가뜩이나
일상의
권태로움이
지겹고
심심한대다가
억지로
하기
싫은
공부,
일
하다보니
공간을
떠나
아예
본격적으로
가상공간으로
빠져든다.
현실에서의
직접적인
인간관계나
삶의
체험보다는
게임이나
드라마나
만화나
영화를
통한
가상적인
공간에서의
체험이
자기의
되고
있다.
영화는
삶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내고
꾸미고,
각색하고,
연기하여
만들어낸
사이비의
(似而非)
삶이다.
청소년이나
기성인
할
것
없이
모두
이
경험이
경험을
압도하고
그리하여
공간은
닫히고
좁아져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공간만
열리어
거짓이
진실이
진실은
되었다.
가상공간을
부정하는
소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를
굳게
내린
연후에
세계를
넘나드는
것은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풍요롭게
수
실상이
있는
곳에
허상이
반드시
따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실체이고
허상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와
동료와
나누는
이것이
현실이다.
드라마에서
연인과
형식만
같지
내용은
거기에
자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공간에
머물지
못하고
공간에서
귀신이
되어
살고
현실로
돌아와서
사람이
살려면
감각을
활짝
열어야
그대로의
사물이
제대로
드러나
보이고
느껴진다.
자기
집에
살면서
방이나
가재도구들이
보이지
학교나
직장의
환경이나
눈에
들어오지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가로수나
간판이나
빌딩이
시야에
잡히지
멀리
보이는
산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띄지
현실감각이
죽어있기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
여기를
떠나지
않으려면
계발하고
활성화하는
수밖에는
없다.
의식의
스크린에
항상
이미지,
생각,
기억,
공상,
쾌락이
난무하여
현실감이
떨어져
버린
까닭이다.
미술을
감상하고
음악을
감상하는
원천은
산이나
들,
강과
바다
등
자연바라봄을
통하여
자연이
연출하는
모양과
색깔과
소리를
감상할
능력을
얻고
난
연후가
되어야
자연의
아름다움을
있어야
도시의
야경도
아름답다고
느낄
있고
미술작품도
음악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가상공간에
빠져
현실을
포착하는
감각의
능력이
좁아지고
줄어들고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게임이든
드라마이든
또는
스포츠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게임을
즐기면서
빠져들지
깨어있을
인간의
주체성과
정체성의
상실이
문제라는
그
모든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죽은
다시
살려내어야
몸이건만
몸동작을
의식하지
마음,
생각이나
감정이건만
즉각
알아차리고
감각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둔감함을
고치기
몸
돌아봄과
마음
돌아봄
공부를
생활
가운데
부단히
실행하면
된다.
닫혔던
펼쳐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살
가상공간도
수용하되
빠지거나
묻히지
않아
귀신을
다스리고
동물성을
다스리는
사람다운
2008. 5. 14
봄26.
현실의
공간과
가상의
공간
눈을
뜨자마자
라디오를
듣고
테레비를
보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등하교
출퇴근을
한다.
가뜩이나
일상의
권태로움이
지겹고
심심한대다가
억지로
하기
싫은
공부,
하기
싫은
일
하다보니
현실의
공간을
떠나
아예
본격적으로
가상공간으로
빠져든다.
현실에서의
직접적인
인간관계나
삶의
체험보다는
게임이나
드라마나
만화나
영화를
통한
가상적인
공간에서의
체험이
자기의
삶의
체험이
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의
삶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내고
꾸미고,
각색하고,
연기하여
만들어낸
사이비의
(似而非)
삶이다.
청소년이나
기성인
할
것
없이
모두
이
가상의
삶의
경험이
현실의
삶의
경험을
압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실의
공간은
닫히고
좁아져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가상의
공간만
열리어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은
거짓이
되었다.
가상공간을
부정하는
소리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에
삶의
뿌리를
굳게
내린
연후에
가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것은
삶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실상이
있는
곳에
허상이
반드시
따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실상이
실체이고
허상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이것이
현실이다.
드라마에서
가족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연인과
대화를
나누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것은
형식만
같지
내용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거기에
자기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공간에
머물지
못하고
가상의
공간에서
귀신이
되어
살고
있다.
현실로
돌아와서
사람이
되어
살려면
감각을
활짝
열어야
한다.
감각을
활짝
열어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이
제대로
드러나
보이고
느껴진다.
자기
집에
살면서
자기
방이나
가재도구들이
보이지
않고
학교나
직장의
환경이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가로수나
간판이나
빌딩이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멀리
보이는
산도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도
눈에
띄지
않는다.
현실감각이
죽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숨쉬는
지금
여기를
떠나지
않으려면
감각을
계발하고
활성화하는
수밖에는
없다.
의식의
스크린에
항상
가상적인
이미지,
생각,
기억,
공상,
쾌락이
난무하여
현실감이
떨어져
버린
까닭이다.
미술을
감상하고
음악을
감상하는
원천은
산이나
들,
강과
바다
등
자연바라봄을
통하여
자연이
연출하는
모양과
색깔과
소리를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얻고
난
연후가
되어야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어야
도시의
야경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고
미술작품도
감상할
수
있고
음악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가상공간에
빠져
현실을
포착하는
감각의
능력이
좁아지고
줄어들고
왜곡되었다는
점이다.
게임이든
드라마이든
또는
스포츠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게임을
즐기면서
빠져들지
않고
깨어있을
수
있는
인간의
주체성과
정체성의
상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
모든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죽은
감각을
다시
살려내어야
한다.
자기의
몸이건만
몸동작을
의식하지
못하고
자기의
마음,
생각이나
감정이건만
즉각
알아차리고
감각하지
못하는
무능함과
둔감함을
고치기
위해서는
몸
돌아봄과
마음
돌아봄
공부를
생활
가운데
부단히
실행하면
된다.
그리하여
닫혔던
감각을
활짝
펼쳐야
현실을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현실공간에
살
수
있고
가상공간도
수용하되
빠지거나
묻히지
않아
귀신을
다스리고
동물성을
다스리는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
2008.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