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4. 부모와 자식
봄4.
부모와
자식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여
남편을
삼으면
가정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가정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결합을
하여
자식이
태어나야
우주의
원리와
같이
제로(0)와
일(1)이
성립되어
운행된다.
제로(0)란
부부사이가
무촌(0)이며
일(1)이란
사이가
일촌(1)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까닭은
자손만대에
걸쳐
그중
한사람이라도
인간완성에
성공하는
자가
나오도록
하기
위한
대우주의
섭리에
따르는
행동이다.
부모의
DNA로
잉태된
아기의
몸은
인간완성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도구로서
태어날
영혼이
사는
집이다.
영혼은
의해
현상의
자기가
본연의
자기로
진화발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부모를
선택한
것이다.
고정불멸한
것이
아닌
현상적인
삶의
과정이다.
모든
것은
알게
모르게
건
옵션에
따라
결정된
그것은
이고(ego,영혼)의
진화발전을
인도하는
최선의
길이다.
마치
새집을
지어놓으면
주인이
들어서는
이치와
같다.
공개입찰을
통해
소유자를
결정하는
것과도
그러므로
입장에서는
새
들어와
주어서
고마운
일이요
자식의
집을
지어주어서
일이다.
부모는
결코
뜻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낳은
자식은
소유물이
육체적으로는
업연에
유전인자를
받았을
뿐
전적으로
다른
독립된
인격이다.
관계는
처음부터
상생의
관계요
피치
못할
숙명의
관계다.
그것이
고마워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에
책임을
지고
애지중지
정성을
다한다.
그
책임은
오로지
되기
전까지다.
마찬가지로
역시
기간을
통하여
재롱을
부리고
어리광을
부리면서
은혜를
다
갚아
마친다.
더
이상
자식에
대한
의무도
없고
또한
부모에
효도하고
봉양할
책무
따위는
없다.
무거운
짐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이
말은
심리적인
부담이나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인정을
베풀고
자발적으로
우러나
오가는
인륜의
정까지
막는다는
무조건
도와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도와주고
신경
쓰는
오히려
자식이나
자발성과
독립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선을
긋고
원칙을
정하는
섭리가
그러하기
가정이나
섭리는
부부가
결합하여
낳아
기를
아니라
더욱
중요한
자기의
업장을
소멸하여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하여
자아를
완성하여야
하는
일이
남아있기
일은
남편이나
아내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부모나
아니기
우리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기르면서
동물성을
다스리고
귀신을
다스리며
자연을
돌보고
가꾸는
만물의
영장이
위함이다.
사람을
완성시키기
가장
중요하다.
부부지간에도
구속되지
말고
부모자식에
애착탐착도
놓아야
이것이
주체성
회복을
방해하고
큰
업장이기
남편도
남이요,
아내도
부모도
자식도
남이다.
나는
누구의
아니요,
남의
걱정하지
자기
걱정하면서
완성하고
완성하는
일이야말로
대우주가
바라는
대도를
실천하는
삶이요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
할
궁극적인
봄4.
부모와
자식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여
남편을
삼으면
가정이
성립한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가정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결합을
하여
자식이
태어나야
우주의
원리와
같이
제로(0)와
일(1)이
성립되어
가정이
운행된다.
제로(0)란
부부사이가
무촌(0)이며
일(1)이란
부모와
자식
사이가
일촌(1)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는
까닭은
자손만대에
걸쳐
그중
한사람이라도
인간완성에
성공하는
자가
나오도록
하기
위한
대우주의
섭리에
따르는
행동이다.
부모의
DNA로
잉태된
아기의
몸은
인간완성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도구로서
태어날
아기의
영혼이
사는
집이다.
영혼은
우주의
섭리에
의해
현상의
자기가
본연의
자기로
진화발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부모를
선택한
것이다.
영혼은
고정불멸한
것이
아닌
현상적인
삶의
과정이다.
모든
것은
알게
모르게
스스로
건
옵션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그것은
이고(ego,영혼)의
진화발전을
위한
본연의
자기가
인도하는
최선의
길이다.
그것은
마치
새집을
지어놓으면
주인이
들어서는
이치와
같다.
그것은
마치
공개입찰을
통해
소유자를
결정하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부모의
입장에서는
새
사람이
들어와
주어서
고마운
일이요
자식의
입장에서는
집을
지어주어서
고마운
일이다.
부모는
결코
자식의
뜻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식을
낳은
것이
아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결코
아니다.
육체적으로는
업연에
의해
부모의
유전인자를
받았을
뿐
영혼은
부모와
전적으로
다른
독립된
인격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처음부터
상생의
관계요
피치
못할
숙명의
관계다.
그러므로
부모는
그것이
고마워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에
책임을
지고
애지중지
정성을
다한다.
그
책임은
오로지
자식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다.
마찬가지로
자식
역시
그
기간을
통하여
재롱을
부리고
어리광을
부리면서
부모의
은혜를
다
갚아
마친다.
더
이상
자식에
대한
의무도
없고
자식
또한
부모에
효도하고
봉양할
책무
따위는
없다.
무거운
짐은
여기서
끝나야
한다.
이
말은
심리적인
부담이나
의무감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인정을
베풀고
자발적으로
우러나
오가는
인륜의
정까지
막는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무조건
도와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도와주고
신경
쓰는
것이
오히려
자식이나
부모의
자발성과
독립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선을
긋고
원칙을
정하는
것은
우주의
섭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가정이나
우주의
섭리는
부부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아
기를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의
업장을
소멸하여
본연의
자기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확립하여
자아를
완성하여야
하는
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남편이나
아내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부모나
자식이
대신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부가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사는
까닭은
오로지
동물성을
다스리고
귀신을
다스리며
자연을
돌보고
가꾸는
만물의
영장이
되기
위함이다.
사람을
완성시키기
위함이다.
이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부부지간에도
구속되지
말고
부모자식에
대한
애착탐착도
놓아야
한다.
이것이
본연의
자기의
정체성과
주체성
회복을
방해하고
저해하는
가장
큰
업장이기
때문이다.
남편도
남이요,
아내도
남이요,
부모도
남이요,
자식도
남이다.
본연의
나는
누구의
남편도
아니요,
누구의
아내도
아니요,
누구의
부모도
아니요,
누구의
자식도
아니다.
남의
걱정하지
않고
자기
걱정하면서
자아를
완성하고
사람을
완성하는
일이야말로
대우주가
바라는
대도를
실천하는
삶이요
우리
모두가
걸어가야
할
궁극적인
삶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