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105.
견우와
직녀의
설화
(100일
정진
65차)
<문학>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만나게
된다는
설화.
칠월칠석이
되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가까워지는
자연현상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와
목동인
견우가
혼인을
했는데
자신들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그
벌로
옥황상제는
두
사람을
1년에
한번만
만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은하수가
그들을
가로막아
만날
수가
없게
되자
수많은
까마귀와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다리를
‘오작교’라
하며,
이날
오는
비,
곧
칠석우는
(七夕雨)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
한다.
<국어사전>
이
설화는
기원전
5세기
때부터
중국
한국
일본에
전해져
오는
음력
칠월칠석날의
전설이다.
이
시기는
농사일도
대강
끝나
호미씻이하는
절기로서
심신을
쉬고
주변을
정리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설화는
두가지
관점에서
해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옥황상제가
자기가
주선한
직녀와
견우의
혼사임에도
불구하고
왜
둘
사이를
떨어뜨렸는가에
대한
해명이고
두번째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떨어져
만나지
못하고
애타게
그리워하며
일년에
한번씩만
만날
찬스가
주어졌느냐라는
점에
대한
해명이다.
혼인상태에
있던
견우와
직녀,
다시
말하면
본연의
자기와
현상의
자기가
본래
분열되지
않고
합일상태였는데
왜
견우와
직녀가
서로
떨어져
분열이
되어
고독과
서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사는지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각자에게
부여된
천부적인
재능(달란트)을
살리며
사는
것이
천명을
완수하는
자기의
본분사인데
이것을
망각하고
부모나
교사나
사회가
바라는
압력에
편승하거나
자기의
재능이
무엇인지
몰라
천명을
어기고
살므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진리를
깨달으려는
구도행위나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욕망이든
거기에
빠져
사사로움을
우선하여
자기의
달란트(talent)를
구현하지
않는
것은
천명을
어기는
것이기에
진리의
벌을
면할
수
없다.
그것이
생각의
이원성에서
오는
번뇌망상이다.
또한
생활과
수행의
분열현상이기도
하다.
농사를
짓고
옷을
해입는
등
생활을
떠난
그
어떤
행각일지라도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안의
자기와
밖의
자기가
분열되어
부족함을
느끼는
가운데
답답하고
고독하고
그리움과
슬픔에
겨운
가운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떨어져
사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이다.
이러한
공간적인
분열상태를
종식시키려면
은하수를
건너
밖의
자기가
안의
자기에게로
파고들어가
닿아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만물의
주인이다.
그리하여
천지만물은
분열된
인간이
합일이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견우와
직녀의
이별을
안타까워
하고
까막까치도
살신성인으로
인간의
완성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일년에
한번
만남의
기회가
온다기
보다
순간
순간
만남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
100일
정진
65차
칠석날을
맞이하여
견우직녀의
전설을
봄으로
풀어보았다.
또한
칠석
하루
전날
제5권
「봄나의
증득」
표지를
허블
망원경으로
은하계를
찍은
사진을
채택한
것
역시
견우직녀의
이별없는
만남의
소원성취를
위한
은하수
도강작전이
아닐
수
없다.
봄105.
견우와
직녀의
설화
(100일
정진
65차)
<문학>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만나게
된다는
설화.
칠월칠석이
되면
견우성과
직녀성이
가까워지는
자연현상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와
목동인
견우가
혼인을
했는데
자신들의
의무를
게을리하여
그
벌로
옥황상제는
두
사람을
1년에
한번만
만날
수
있게
하였다.
그런데
은하수가
그들을
가로막아
만날
수가
없게
되자
수많은
까마귀와
까치가
머리를
맞대어
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다리를
‘오작교’라
하며,
이날
오는
비,
곧
칠석우는
(七夕雨)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라
한다.
<국어사전>
이
설화는
기원전
5세기
때부터
중국
한국
일본에
전해져
오는
음력
칠월칠석날의
전설이다.
이
시기는
농사일도
대강
끝나
호미씻이하는
절기로서
심신을
쉬고
주변을
정리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
설화는
두가지
관점에서
해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는
옥황상제가
자기가
주선한
직녀와
견우의
혼사임에도
불구하고
왜
둘
사이를
떨어뜨렸는가에
대한
해명이고
두번째는
견우와
직녀가
서로
떨어져
만나지
못하고
애타게
그리워하며
일년에
한번씩만
만날
찬스가
주어졌느냐라는
점에
대한
해명이다.
혼인상태에
있던
견우와
직녀,
다시
말하면
본연의
자기와
현상의
자기가
본래
분열되지
않고
합일상태였는데
왜
견우와
직녀가
서로
떨어져
분열이
되어
고독과
서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며
사는지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각자에게
부여된
천부적인
재능(달란트)을
살리며
사는
것이
천명을
완수하는
자기의
본분사인데
이것을
망각하고
부모나
교사나
사회가
바라는
압력에
편승하거나
자기의
재능이
무엇인지
몰라
천명을
어기고
살므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진리를
깨달으려는
구도행위나
재색명리를
추구하는
세속적인
욕망이든
거기에
빠져
사사로움을
우선하여
자기의
달란트(talent)를
구현하지
않는
것은
천명을
어기는
것이기에
진리의
벌을
면할
수
없다.
그것이
생각의
이원성에서
오는
번뇌망상이다.
또한
생활과
수행의
분열현상이기도
하다.
농사를
짓고
옷을
해입는
등
생활을
떠난
그
어떤
행각일지라도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안의
자기와
밖의
자기가
분열되어
부족함을
느끼는
가운데
답답하고
고독하고
그리움과
슬픔에
겨운
가운데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바로
떨어져
사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이다.
이러한
공간적인
분열상태를
종식시키려면
은하수를
건너
밖의
자기가
안의
자기에게로
파고들어가
닿아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고,
만물의
주인이다.
그리하여
천지만물은
분열된
인간이
합일이
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견우와
직녀의
이별을
안타까워
하고
까막까치도
살신성인으로
인간의
완성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일년에
한번
만남의
기회가
온다기
보다
순간
순간
만남의
기회가
주어져
있다.
100일
정진
65차
칠석날을
맞이하여
견우직녀의
전설을
봄으로
풀어보았다.
또한
칠석
하루
전날
제5권
「봄나의
증득」
표지를
허블
망원경으로
은하계를
찍은
사진을
채택한
것
역시
견우직녀의
이별없는
만남의
소원성취를
위한
은하수
도강작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