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59. 토론과 탁마



봄59. 


토론과

탁마



토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반면


탁마는 


누구나 

할 

수 

없다.


토론은 


사사건건마다 


주제에 

따라


자기의 

지식과 

경험에 

의거


자기의 

주장을 

피력하고


자기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설득하고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타협하거나 

협상하는 

것이 


고작으로


진리적으로

 

공감하고 

공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탁마는

 

감각을 

활짝 


자기의 

주의 

주장이 


전무한 

상태에서


사안에 

따라 


그때 

그때 

몰라봄에서


이치를 

궁리하여 


임기응변으로


직관적으로 

나오는


감각의 

언어이지만


토론은 


지식이나 

정보에 

의거한


자기의 

신념이나 

결론에 

의거하여  

나오는


생각의 

언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탁마의 

주제는 


은연중


자기의 

정체성이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나


그 

이후의 


증득의 

과정이나


또는 


주체성의 

발휘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과 

응답을 

통해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점을


쪼아주고 

연마함으로써


상호보완하여


이심전심으로 


공감에 

이르고자 

한다.


토론은 


말이 

길고 

사변적이고 

논리적이지만


탁마는 


말이 

간단하고 

사실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자기를 

열지 

못하여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한 

사람이나


비록 

일시적으로


자기를 

연 

체험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의 

정체성을 

증득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몽땅 

비워


아무런 

자기의 

주장이 


없는 

자리에서


끝까지 

대화에 

임하기가 

어려운지라


생각이 

주도하는 


이분법의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자기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무엇임을


조금이라도 

깨달은 

사람이라면


주체성이 

완전히 

선 


원숙한 

가이드와


탁마를 

지속함으로써


혼자서 

터득하기 

어려운


탁마의 

오묘한 

세계에 


쉽게 

진입하여


감각의 

언어로 

구사하는


격외의 

도리를 


체득할 

수 

있다.


토론은 

밤새고 

해보았자


기력만 

소진할 


별다른 

성과가 

없지만


탁마는 


비록 

어렵지만


사람의 

그릇을 

키워주고 


집중력을 

향상시켜


의식의 

수준을 

향상시켜 

준다.


탁마를 

통하여


감각을 

활짝 

연 

상태를 

지속시키는 

힘과


열린 

의식의 

스크린에


선악 

시비로 

분열하여

 

대립 

갈등 

투쟁하는


생각의 

이원성을


하나의 

공간에 

공존시키는


포용력을 

발휘하여


상극의 

관계를 

상생으로 

이끄는


통달한 

인간으로 

거듭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