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17. 선(善)과 악(惡)
봄17.
선(善)과
악(惡)
본래
선과
악이라는
율법이나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은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이므로
착하다는
생각이나
악하다는
없는
자리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단지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는
착한
것이고
저런
것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형성된
과거의
전통이나
윤리도덕으로서
하나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의식이나
관행으로서
자유로운
생명의
발현이라기
보다
그
당시에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식과
룰을
정하여
질서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주인노릇을
것이므로
생각의
노예를
면치
못하는
이전이
바로
봄이요,
주인이요,
생명이요,
길이다.
기준이
윤리도덕이나
선악관이다.
선악이
자리인
봄(대아)에서
순간
생각과
행동이
저절로
나와야
창조가
되고
진정한
선악의
취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봄에서
나온
행동이라야
선(善)이요
절대의
선(善)이다.
모든
율법으로부터
벗어난
거기에서만
이루어지고
우주적인
섭리가
형식이나
틀에
매여서
언행이란
답습이요,
모방이요,
굴종으로서
노예이지
주인이
봄이야말로
주인으로
선악이라고
율법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진실한
창조적인
삶임을
알아야
한다.
고정관념을
자유의
경지요
완전무결한
창조적
상태다.
사람들은
바르게
사는
길이
전통을
답습하고
복종하는
것이고,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선악관에
붙잡히지
말고
봄의
자리에서
봄이
명하는대로
진실의
행이요,
선(善)임을
진실이고
진실에서
선이고
그렇게
늘봄의
생활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하여야
고정관념화된
선(善)을
추구하고
따르는
대립
갈등
투쟁의
분열의
삶이요,
미숙한
노예의
삶이므로
선이
아니라
오히려
사실을
봄17.
선(善)과
악(惡)
본래
선과
악이라는
율법이나
규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봄은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이므로
착하다는
한
생각이나
악하다는
한
생각이
없는
자리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단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착한
것이고
저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악하다는
것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형성된
과거의
전통이나
윤리도덕으로서
하나의
선입관이나
고정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의식이나
관행으로서
자유로운
생명의
발현이라기
보다
그
당시에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형식과
룰을
정하여
질서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한
생각이
주인노릇을
하는
것이므로
한
생각의
노예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선과
악이라는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이
바로
봄이요,
주인이요,
생명이요,
길이다.
과거의
기준이
윤리도덕이나
선악관이다.
선악이
없는
자리인
봄(대아)에서
순간
순간
한
생각과
행동이
저절로
나와야
창조가
되고
진정한
선악의
취사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봄에서
나온
생각과
행동이라야
진정한
선(善)이요
절대의
선(善)이다.
봄은
과거의
모든
율법으로부터
벗어난
자리다.
거기에서만
진정한
창조가
이루어지고
우주적인
섭리가
이루어진다.
형식이나
틀에
매여서
나온
생각이나
언행이란
답습이요,
모방이요,
굴종으로서
생각의
노예이지
생각의
주인이
아니다.
봄이야말로
생각의
주인으로
과거의
선악이라고
하는
율법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롭고
진실한
창조적인
삶임을
알아야
한다.
봄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자유의
경지요
완전무결한
창조적
상태다.
사람들은
바르게
사는
길이
과거의
전통을
답습하고
복종하는
것이고,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과거의
선악관에
붙잡히지
말고
선악이
없는
봄의
자리에서
봄이
명하는대로
사는
것이
진실의
행이요,
진정한
선(善)임을
알아야
한다.
봄이야말로
진실이고
진실에서
나온
것이
선이고
그렇게
사는
늘봄의
생활이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선입관이나
고정관념화된
선(善)을
추구하고
따르는
것이
대립
갈등
투쟁의
분열의
삶이요,
미숙한
삶이요,
노예의
삶이므로
선이
아니라
오히려
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