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62. 유위법과 무위법

유종열
2022-06-01
조회수 42



봄62.


유위법과

무위법 



유위법을


소아본위로 

살아가는 

법이라면,


무위법은


대아본위로 

살아가는 

법이다.


유위법은


소아의 

이원적인 

분열구조가

근본이 

되어 

벌어지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나와 

너, 


우리와 

그들, 


남성과 

여성,


구세대와 

신세대, 


보수와 

진보, 


수구와 

개혁,


자유와 

평등, 


정신과 

물질, 


동양과 

서양간의


대립 

갈등 

투쟁의 

구도가 

벌어진다.


그리하여


한편으로는 

경쟁하고 

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타협하고 

협상하고 

화해하면서 


이합집산을 

(離合集散)

거듭한다.


유위법의 

세계는


언제나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하는 


'나'라고 

하는 

주관을 

설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소아'이다.


그래서

주객이원의

상대세계가

 

무진장하게

벌어진다.


소아의 

의식수준이란

육체를 

자기로 

알고 

있는 

수준이므로 


항시 


죽음에의

공포와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재색명리를 

(財色名利) 

추구하게 

되고


서로간에 

쟁탈전이 

벌어진다. 


타협과 

협상과 

화해

역시


일시적인 

휴전에 

지나지 

않는다. 


소아본위로

살아가는 

사람이 


상생이니 

평화니 

하는 

말을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호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것에 

신물이 

난 

사람은 


과연 

지금까지

자기가 

신주단지 

처럼

모시던


'나'라고

하는 

주체 


'소아'가 

무엇인가

하고 


자기를

돌아보면


그러한 

자기는 

(小我)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다만 

문득

문득


나라고 

하는 

생각이 


본연의 

(大我)의 

표면에


파도처럼 

일고 

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아는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심부름꾼, 


입회인, 


증인에

불과함을 

알게 

된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대아로서


대아는 

죽음이 

없고,


공포도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대아가 

바로

우주의

주인이고


오직 

하나의 

생명이고


진리당체임을 

알게 

된다.


일거일동은

소아가 

하는 

것이 

아니고


대아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소아본위의 

삶이


대아본위의 

삶으로 

바뀌게 

된다.


여기에서


유위법이

무위법으로 

바뀌게 

된다.


대아를 

깨달았으므로 


대아가 

나를 

살리든 

죽이든 


모든 

것을

대아에게 

맡기는

삶으로

전환한다. 


지금까지 

주인노릇하던

소아는 


스스로

대아의

자식,


대아의 

제자노릇을 

한다.


이렇게 

살면 


전적으로 

대아에게 

책임이 

있으므로 


반성할 

것도 

없고


판단 

평가 

심판할 

일이

없어진다.


무위법으로

산다는 

것은


천명을 

알아


자기의 

사명을


천직으로

알고

살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므로


나날이 

즐겁고


일을

통해


동포들에게

봉사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위법에서 


무위법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무위법을 

사는 

사람이라야


진정한 

충신이고

효자(효녀)가 

되어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가야 

한다. 


살길은 


이 

길 

뿐이다.


이것이

제3의

길이다.


이것이 

무위법이다.




-2004.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