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48. 심봉사가 눈을 뜨면

유종열
2022-06-15
조회수 51


봄48. 


심봉사가 

눈을


뜨면



우리의 

맹점은


자기를 

바라보고 

아는


마음의

눈을

뜨지

않고 

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제3의 

눈이라고 

부를


심안, 


영안을 

뜨고 

산다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


자기의

운명이란


자기의 


성질, 

기질, 

체질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삶의 

질을 

말한다.


자기의 

질과 


격이 

높아지면


그에 

상응한 


대우와 

대접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자기의 

운명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 

간다.


자기의

운명을 


자기가

뜯어 

고치려면


우선 

자기를 

알아야 

한다.


자기를 

알기 

위해서는


자기를 

들여다보며 

사는 


눈을 

떠야 

한다.


그렇다면


자기를

들여다본다고 

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들여다본다는 

말인가?


안으로는


생각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밖으로는

그 

생각이


자기의 

입을 

통하여


언어로


몸을 

통하여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알아차림을

말한다.


생각을

들여다보노라면


생각이나 

느낌으로

구체화되기 

이전의


파장 

파동 

영상 

그림

등의


아주 

미세한 

장면이 

포착된다.


그것은 

마치


바다 

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자기의 

안을

들여다보며 

살다 

보면


그러한 


잠재된

자기의 

정보가


입을 

통해 


말로 

표현되고


몸을 

통해 


행동으로

표출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이와 

같이


안과 

밖이


환하게 

드러나 

보이게 

되면


이를 

일러


(心)봉사가

드디어

눈을

떴다고 

것이다.


눈을 

떠야 

보이고


보여야 

고치게 

된다.


보이지

않아 


모르고


몰라서


고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의 

거짓을

봄으로서


진실로

돌아가고,


자기의 

악함을 

봄으로서


착함으로

돌아가고,


자기의 

추함을 

봄으로서


아름다움으로


끝없이

돌아가는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면


밖으로 

나타나는 

과정까지


소상하게 

지켜보게 

됨으로서


생각이나 

물질로 

고정화되기


이전의 

단계에서


자기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자기의 

운명을

창조하고 

개척해 

갈 

수 

있다.


일단 

구체화되고 

고정되면


지우거나 

소멸시키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므로


처음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비록


이미 

고착화된 

것이라도


일단

그것의 


저질성과 

미숙성과 

편협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즉시 

고쳐나갈 

수 

있다.


심봉사가 

눈을 

뜨면,


얼굴이 

달라지고


음성이

달라지고


언어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심봉사가 

눈을 

뜨면,


성질이 

바뀌고,


기질이 

바뀌고,


체질이 

바뀌기 

시작한다.


심봉사가

눈을 

뜨면


운명이 

바뀌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