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91. 꿈보다 해몽

유종열
2022-05-02
조회수 17



봄91.


꿈보다 

해몽 



평상시에 


마음(생각)을 

통해 


몸을 

부리려고 

끼어들거나 

관여하지 

않고 


모든 

움직임을 


몸에게 

맡겨 

놓고 


"바라봄"의 

생활을 

하게 

되면 


몸이 

모든 

걸 

알아서 

한다.


몸을 

부리고 

써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해방되면 


참으로 

편하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밖으로 

남에게 

참견하거나

간섭하지 

않고 


시비를 

떠나 

바라보고 

이해하는

삶이 

살아진다.


"돌아봄"을

통해 


내면의 

합일이 

(合一) 

이루어져야 


드디어 


"바라봄"의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라봄"이란 


몸이 

움직일 

때 


몸과 

하나됨이요 


마음이 

움직일 

때 


마음과 

하나됨이다. 


달리 

말하면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분열되지

않고 


묘하게 

하나로 


균형과 

(均衡)

조화를 

(調和)

이룸이다.


이렇게

바라봄이야말로 


바르게

봄이다.


객관적인 

안목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꿈도 

마찬가지다.


꿈이라고 

하면 


밤에 

자면서 

꾸는

꿈도 

꿈이지만 


낮에 

깨어 

꾸는 

백일몽도 

(白日夢)


역시 

꿈이다.


꿈은 

마음의 

소관사항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대몽을 

(大夢)


대각하지 

(大覺)

않는 

이상 


꿈을 

꿀 

수밖에 

없다.


다 

같은 

꿈이라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만사가 

마찬가지다.


"늘봄"의 

삶으로

전환한 

사람은 


꿈을

꾸지도 

않지만 


꿈을 

꾸더라도 


꿈인 

줄 

알기에 


꿈은 

이상

진전되지

않는다.


몸과 

마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은 


객관적 

안목과 


주관적

안목이 


다르지 

않다.


주관과 

객관의 

분리가 

없으므로 


객관이 

주관이고 


주관이 

객관이 

된다.


그것이

"봄"이다.


생사,

(生死)

승패, 

(勝敗)


손익이 

(損益)


둘이 

아닌

도리를 

(道理)

깨달아 


그 

무엇이라도 

받아들일

각오가 

(覺悟)

되어있으므로 


악몽

(惡夢)

또는

길몽

(吉夢) 


어느

하나로

해몽을 

(解夢) 

하지 

않는다.


양자택일의 

(兩者擇一)

논리에

빠지지

않는다.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은 


객관적인 

틀에 

매이지 

않아 


언제나 

자유롭게 

해몽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어떤 

꿈이냐, 


악몽이냐? 

길몽이냐?

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꿈을 

어떻게 

보고 

해석하느냐다. 


인생만사가 

그렇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서야 


주관적인 

판단 

평가 

심판이 


적법하고 

(適法)

유효하다. 

(有效)



-200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