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68. 관상과 심상

유종열
2022-05-25
조회수 20



봄68.


관상과

심상 



관상(표정)을 

보고

사람들은 


그 

사람의 

의식의 

수준을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관상(표정)이란


얼마든지 

꾸며서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연기자는 

얼마든지


남들이 

보기에 

좋은 

얼굴을


꾸며 

보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얼굴을 

꾸밀 

수 

있다.


그러므로 

관상을 

보고서는


그 

사람의 

진짜 

속내를 

알 

수 

없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얼굴은


맑고 

밝은 

얼굴이다.


그래서 

이따금 

나는


나의 

연기력을 

발휘하여


내 

얼굴을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이따금씩 

지어보인다.


그렇게 

하면


나의 

연기력에 

걸려드는 

사람이

반드시 

나타난다.


전에 

보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아는 

소리를 

한다. 


이런 

상황을 

맞을 

때마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내 

속마음을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지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이 

없다.


내가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은


그들이 

조금이라도 

변화하고


진전된 

모습을 

보일 


기뻐하고

좋아하는

표정을

지은 

것에 

불과하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나는 

사실 


환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그들을 

만나면

나는 

근심으로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그들은

나의 

그런 

표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 

같이

어둡고 

괴로운 

표정이라도


무엇 

때문에 

그러한지를

알아야 

한다. 


즐겁고

밝은 

표정이라도


무엇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짓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들은 

내가 

밝고 

기쁜 

표정을 

지어도


흡족해서 

그런 

표정을 

지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까마득하게 

모른다.


자기의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돌아볼

줄 

모르다가


조금이라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그들을 

칭찬하고 

기뻐하는 

표정을 


순간

짓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돌아봄'의 

단계를 

지나


'바라봄'의

단계로 

들어서는 

사람을 

보고도


나는 

그들에게

기뻐하고 

좋아하는 

표정을

순간적으로

짓는다. 


또한


'바라봄'의 

단계를 

지나


'늘봄'의 

단계로 

전환하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어김없이

기쁘고 

밝은 

표정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만나는 

대부분의 

나의 

표정에서


밝은 

모습을

찾아보기 

드문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나의 

속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고


나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 

평가 

심판을 

하는 

것이다.


밝은 

것은 

좋고


어두운 

것은 

나쁘다는 

식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소아의 

행동이지


대아의 

행동이 

아니다.


소아는 

오직 

보기만 

하여야 

한다.


소아가 

판단 

평가하면 

안된다.


소아는 

외면의 

모습, 

관상만을 

본다.


소아가 

침묵의 

주시와

관조를

할 


비로소

대아가 


내면의 

모습, 

속 

마음,


심상을

꿰뚫어보게 

된다.


육안으로서는 

관상 

밖에 

보지 

못한다. 


영안이라야 

(靈眼)

심상을 

수 

있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읽을 

수 

있으려면


소아는 

판단 

평가 

심판을 

보류하고


침묵을 

지키면서


오직 

주시만 

하여야

한다.


그래야 

속마음(심상)

보인다.


영적인 

능력을

계발하려는

사람은


육안으로 

관상(표정)을 

보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심상을 

보고


진실이

무엇임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깊은 

속을 

들여다 

보려면,


(氣)의 

차원을 

넘어


(靈)의 

차원이 

되어야 

한다. 



-2004.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