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102. 대아는 왜 소아를 만들었을까?

유종열
2022-04-21
조회수 17



봄102.


대아는 

왜 

소아를 

만들었을까?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기르는 

것은 


대아의 

놀이이자 


대아의 

일이며 


대아의 

삶이다.


심심풀이로

움직이다 

보니, 


하늘 

만들고, 


해와 

달과 

별 

만들고, 


식물과 

동물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비록 

보기에는 

좋을 

망정, 


자기를 

알아보는 

놈이 


한 

놈도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서 

대아는 


소아(사람)를 

만들어 


대아인 

나를 

알아보고 


나와 

소통될 

수 

있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에

이르러, 


대아가

왜 

소아(사람)

만들었는지에 

대해 


확연히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현재


"봄나라 

클럽"을 

만들고,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보고 


나와 

소통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주기를


소망하는

것과 

같다.


내가

대아를 

알아보고


대아와 

소통되듯이,

 

나는 

나대로


나를 

알아보고


나와 

소통되는 

사람이 

나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글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고

전력투구한다.


이것이 


나의 

놀이인 

동시에 


나의 

일이며 


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소아(사람)가 

존재하는 

까닭은 


자기 

안에 

내재된 


대아를 

알아보고 


대아와 

소통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우주의 

섭리란 


사람이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소아)은 


반드시

대아를

깨달아

 

대아를

알아보고


대아와 

통할 

수 

있는 

삶을 


개척하며 

살아야 

한다.


모든 

종교는 

이와 

같은


대아의 

소망을 

실현시키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근본핵심이 

희석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인간의

의식을 

분열시키는 


부정적인 

측면조차 

없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필요하고 

번거로운 

절차와 

의식을 

(儀式) 

생략하고,

 

삶의

현장에서

각자 


직접 

대아를 

찾고 


대아를 

만나기 

위한 

생활로

전환하여야 

한다.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돌아봄,

바라봄,

늘봄"의

생활(수행)이다.


대아를 

알아보고 


대아를 

만나기 

이전에 


소아부터 

(마음과 몸)

만나고 


소아부터

알아보자는 

것이다.


자기가 

바로


욕심쟁이, 

사기꾼, 

깡패, 

도적, 

악질, 

문둥이,

겁쟁이, 


쫌생이 

짓을 

할 

때가 

많다는 

사실을 

보고 


인정하고

고치고 

비워야, 


비로소

거기에 

있는


대아가 

보이고 


대아를

만날 

수 

있다.


자기가 

자기를 

보고 

알고 

고치지 

않고서는 


대아를 

만날 

수 

없다.


실지로 

자기를 

"돌아보고 

바라보고 

늘보는" 

삶을 

통해 


소아는


천사의 

모습을

띄기도 

하고 


악마의 

모습을

띄기도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우리는 


천사와 

악마를 

초월한 


대아본위의 

인간으로 

거듭난다.


물질적인 

존재가


영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이고, 


이것이 


바로 

대아의 

뜻이며, 


우주의 

섭리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