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85.
대몽에서
(大夢)
대각하는
(大覺)
것이
대도이다.
(大道)
"보는 나"와
"보이는 나"로
나가
분열된
(分裂)
상태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
꿈을
꾸며
산다.
분열상태에서
발해지는
생각
역시
항상
이분법적인
분열의
구도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주객,
(主客)
능소,
(能所)
음양의
(陰陽)
분열상태가
바로
꿈의
배경이자
원인이다.
사실은
분열이
아닌데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므로
환상과
거짓이라고
하는
꿈을
꾼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은
천지만물
우주만유가
하나의
이치와
(理致)
기운으로
(氣運)
돌아가는
하나의
큰
덩어리다.
또한
하나의
생명현상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은
둘로
분열된
자기를
합일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보는
나와
보이는
나의
분열과
경계선과
장막이
쳐지는
바람에
거짓된
세계가
진짜처럼
여겨지는
꿈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소수의
깨달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진짜처럼
보이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든
세상
또한
꿈
속의
가짜
세상
사이비
세상인
것이다.
개혁을
한다,
평화를
추구한다,
모두가
몽유병환자의
행동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대립
갈등
투쟁이라고
하는
패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궁해지고,
막히고,
아프고,
속이
상하고,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나고,
소리
지르게
되고,
싸우게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렇게
늘
되풀이하며
살
수밖에
없다.
별도리가
없다느니,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느니
하며,
체념과
허탈
속에
속수무책으로
악몽을
(惡夢)
꾸며
살아간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므로
거짓과
환상이라고
하는
인생의
대몽에서
(大夢)
대각하지
(大覺)
않으면
생사,
(生死)
선악,
(善惡)
시비,
(是非)
분별이라고
(分別)
하는
희비쌍곡선이
그칠
날이
없다.
꿈은
내면의
분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둘을
하나로
합일시키는
(合一)
일만이
꿈에서
깨어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꿈에서
깨어나
다시금
꿈을
꾸지
않기
위해서는
"보는 나"가
"보이는 나"를
향해
끊임없이
안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아쉬움과
외로움과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합일시키고
말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쉬지
않고
정진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돌아봄을
통해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합일이
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일단
꿈에서
깨어나도
잔상이
남아있으므로
바라봄의
생활을
계속하고
늘봄의
생활이
정착되어야
다시는
꿈에
빠져들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천지만물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안목이
생긴다.
생각이나
감정이나
언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냉정함이
자리잡게
되고
넉넉한
이해와
사랑과
자비심이
우러난다.
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의
고요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가
존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해가
있을
수
없고
시비가
있을
수
없고
화내고
시끄럽게
싸울
일이
없다.
그
모든
것은
꿈
속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모두
꿈
속의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는
꿈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쉬움이
없고,
외로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억울함이
없고,
슬픔도
없다.
이따금
그런
것이
찾아오더라도
꿈인
줄
알아서
다시는
속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몽에서
(大夢)
대각하는
(大覺)
것이
대도임을
(大道)
알아야
한다.
-2004.09.20
봄85.
대몽에서
(大夢)
대각하는
(大覺)
것이
대도이다.
(大道)
"보는 나"와
"보이는 나"로
나가
분열된
(分裂)
상태로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
꿈을
꾸며
산다.
분열상태에서
발해지는
생각
역시
항상
이분법적인
분열의
구도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기
마련이다.
주객,
(主客)
능소,
(能所)
음양의
(陰陽)
분열상태가
바로
꿈의
배경이자
원인이다.
사실은
분열이
아닌데
자기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므로
환상과
거짓이라고
하는
꿈을
꾼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은
천지만물
우주만유가
하나의
이치와
(理致)
기운으로
(氣運)
돌아가는
하나의
큰
덩어리다.
또한
하나의
생명현상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행하지
못하는
것은
둘로
분열된
자기를
합일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보는
나와
보이는
나의
분열과
경계선과
장막이
쳐지는
바람에
거짓된
세계가
진짜처럼
여겨지는
꿈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소수의
깨달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진짜처럼
보이는
꿈을
꾸며
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든
세상
또한
꿈
속의
가짜
세상
사이비
세상인
것이다.
개혁을
한다,
평화를
추구한다,
모두가
몽유병환자의
행동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대립
갈등
투쟁이라고
하는
패턴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궁해지고,
막히고,
아프고,
속이
상하고,
신경질이
나고,
화가
나고,
소리
지르게
되고,
싸우게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렇게
늘
되풀이하며
살
수밖에
없다.
별도리가
없다느니,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느니
하며,
체념과
허탈
속에
속수무책으로
악몽을
(惡夢)
꾸며
살아간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므로
거짓과
환상이라고
하는
인생의
대몽에서
(大夢)
대각하지
(大覺)
않으면
생사,
(生死)
선악,
(善惡)
시비,
(是非)
분별이라고
(分別)
하는
희비쌍곡선이
그칠
날이
없다.
꿈은
내면의
분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둘을
하나로
합일시키는
(合一)
일만이
꿈에서
깨어나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꿈에서
깨어나
다시금
꿈을
꾸지
않기
위해서는
"보는 나"가
"보이는 나"를
향해
끊임없이
안으로
파고들어가야
한다.
아쉬움과
외로움과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합일시키고
말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쉬지
않고
정진하는
버릇을
들여야
한다.
돌아봄을
통해
내면으로
파고들어가
합일이
되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일단
꿈에서
깨어나도
잔상이
남아있으므로
바라봄의
생활을
계속하고
늘봄의
생활이
정착되어야
다시는
꿈에
빠져들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천지만물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안목이
생긴다.
생각이나
감정이나
언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는
냉정함이
자리잡게
되고
넉넉한
이해와
사랑과
자비심이
우러난다.
그러므로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의
고요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가
존속하게
된다.
그러므로
오해가
있을
수
없고
시비가
있을
수
없고
화내고
시끄럽게
싸울
일이
없다.
그
모든
것은
꿈
속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모두
꿈
속의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는
꿈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쉬움이
없고,
외로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고,
억울함이
없고,
슬픔도
없다.
이따금
그런
것이
찾아오더라도
꿈인
줄
알아서
다시는
속지
않는다.
그러므로
대몽에서
(大夢)
대각하는
(大覺)
것이
대도임을
(大道)
알아야
한다.
-2004.09.20